피플 > 뉴스룸 칼럼 우리가 지켜야 할 골든아워 2025.08.20

“그때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흔히 ‘골든타임’이라고 알려진 ‘골든아워(Golden Hour)’는 중증 외상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1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용어는 반드시 중증 외상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심혈관중재술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급성 뇌졸중 환자가 뇌혈관중재술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등 빠른 처치가 생사를 가르는 다양한 상황에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문제는 이러한 골든아워가 요구되는 질환들이 꼭 급성 증상을 반드시 동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사례들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최근에 두통을 동반한 어지럼증이 있어 응급실에 내원한 노인 환자가 있었다. 환자의 의식 수준은 통증 자극에만 반응할 정도였고, 호흡도 불안정했다. 보호자는 환자의 증상이 한 달 전부터 있었고, 1주일 전부터 심해졌다고 했다. 내원 당일 아침에 유독 이상한 반응을 보여119를 통해 내원했다고 한다. 환자는 80대였고, 기저질환으로 부정맥이 있어 항응고제를 복용 중 이었다. 

 

이런 경우 가장 먼저 감별해야 하는 것은 ‘뇌출혈’ 여부다. 처방에 맞게 즉시 뇌 CT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 결과 환자의 뇌에는 이미 다량의 피가 고여 뇌를 압박하고 있었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고령과 기대여명을 고려할 때 보호자의 판단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보호자는 연명의료중단을 선택했다.

 

보호자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넘어졌다고 하셨어요. 같이 살지 않으니까 상태를 정확히 몰랐고 괜찮은 줄 알았어요. 조금씩 이상한 말을 하셔서 치매가 오셨나 했죠. 그런데 출혈이라니...” 보호자의 자책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갔다.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이상하다 싶었을 때 빨리 병원에 왔더라면 이렇게 갑자기 이별하게 되진 않았을 텐데’하는 후회가 눈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 환자의 진단명은 ‘만성 경막하출혈’이었다. 노년층에게 자주 발생한다. 뇌의 위축으로 경막과 두개골 사이 공간이 넓어지면서 서서히 피가 고인다. 문제는 이 질환의 증상이 두통, 구토, 언어 장애, 편측 마비처럼 다양하면서도 치매나 정신질환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년층의 치매, 정신질환과 만성 뇌출혈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치매는 보통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며, 기억력 저하 등 일상생활 전반의 기능 저하가 나타난다. 반면, 만성 경막하출혈은 증상 악화 기간이 비교적 짧고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외상력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없던 두통이 생기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경우라면 단순 노화나 치매로 보기 어렵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거나 악화되면 반드시 가까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고령인 경우엔 대부분 고혈압이나 심혈관질환 등 기저질환으로 인해 항응고제, 항혈소판제를 복용 중인 경우가 많아 더욱 주의해야 한다. 외상 이후 사소한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있으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만약 의식 저하나 얼굴 비대칭, 편측 위약감,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보인다면 지체 없이 119에 신고하자. 

 

 

위 사례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골든아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드라마처럼 1분 1초 사투를 벌이는 숨가쁜 모습은 분명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그런 골든아워는 존재한다. 평소 가족의 이상 신호를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펴보자. 그것이 우리가 지켜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골든아워다.

응급간호팀
김윤섭 주임

응급간호팀 김윤섭 간호사는 2019년부터 응급실에서 근무하며 위급한 순간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빠른 대처가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누구나 긴급할 때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 이야기와 함께 응급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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