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노년 건강의 매듭을 풀며 2021.12.15

노년내과 장일영 교수

 

 

내과 전공의 시절, 치료를 잘 마치고도 기력이 돌아오지 않는 노인 환자들을 보며 의아했다. 환자들이 진짜 아프고 불편하게 여기는 건 따로 있었다. 특정 질병으로 꼽기 어려운 문제였다. “세분화된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보였습니다. 노인 환자의 전반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필요한 거죠. 외국의 사례를 찾아볼수록 한국도 곧 시대적 요구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당시로선 낯선 선택이었지만 기대와 확신이 있었습니다.”

 

배움과 실행

노인 치료가 처음부터 잘 맞았던 건 아니다. 병력과 증상을 보고 진짜 아픈 것과 심리적인 것을 구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어디까지 검사하고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지? 해결은 가능한 걸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료 스타일과 기준이 잡힐 때까지 독하게 공부했다. 부족한 외래 경험은 보건소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면서 채워갔다. 노인 환자의 현실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의료 혜택이 진짜 필요한 대상은 진료실 밖의 거동이 어렵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었습니다. 건강에 대한 인식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죠. 가정과 사회, 병원을 연계해 치료의 연속성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장 교수는 평창 지역 1,606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코호트 연구를 시작했다. 지역 사회 연구는 실패할 거라는 충고가 많았지만 실행에 옮겼다. “예상보다 연구는 훨씬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체계적인 노인 건강 관리의 근거를 마련해야 했어요. 서울아산병원에서 배운 것과 미국 연수 네트워크를 활용했죠.” 영양 관리와 운동, 약제 조절 등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했다. 노인 건강 관리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화한 작업은 사망률과 장애 지연 효과를 입증하면서 각종 국제 학술지에 실렸다. “혼자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가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어요. 10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별다른 치료 없이 밭일을 하면서 몸을 방치한 케이스였죠. 여러 달 관리를 하며 함께 노력한 끝에 혼자 걸어서 외래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올해는 꼭 죽어야지 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살고 싶어요. 사는 재미를 알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거다! 싶었죠. 연구를 통해 노인 분들께 짧게는 2개월, 길게는 5년 이상의 일상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꿈

장 교수는 어린 시절 경찰을 꿈꿨다. 세상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하지만 시력이 나빠 입시 직전에 꿈을 포기했다. 카이스트에 입학한 뒤 사람과 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직업을 찾고 싶어 의대로 재입학 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과외가 점점 늘어나면서 가르치는 일에 뜻밖의 흥미를 느꼈다. “상대방을 쉽고 편안하게 이해시키는 법이나 동기를 부여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힌 것 같아요. 그때 제가 환자 치료 노하우를 배운 셈이죠.”

그가 만나는 노인 환자의 대부분은 오랜 생활 습관과 바뀐 몸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고,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르신들의 경험에 대치하기보다는 개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진단명과 치료 방법은 어느 의사나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설명 방식이 달라지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져요. 치료에 대한 신뢰와 실행 동기가 다르니까요.” 환자들이 여러 병원에서 받아온 수십 가지 처방을 찬찬히 살피며 제3자의 관점에서 꼬인 매듭을 풀어갔다. 복용 약과 생활 습관만 섬세하게 조정해도 환자가 느끼는 변화는 컸다. “환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어려운 고비마다 적절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관련 정책에도 참여하며 병원과 사회를 연결할 방법을 찾죠.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오랜 꿈이 노인질환 전문가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준비된 변화

10년 전만 해도 근감소증은 노화에 따른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감소증을 방치하면 골절과 낙상, 노인 우울증, 각종 장애와 사망까지 이른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녀 손에 이끌려 오던 환자들은 이제 스스로 장 교수를 찾아온다. “근감소증이나 노쇠를 말씀하시며 오는 어르신들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껴요.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서 대비할 것이 많습니다.” 수술이나 시술, 중환자실 치료를 완벽히 해도 질병의 경과는 개인사와 맞닿아 있다. 환자 스스로 집에서 건강을 관리할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이유다. 또 시니어환자위원회 활동을 통해 환자 및 내원객의 고령화에 대비한 업무 흐름과 직원 교육, 소통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노인 친화적 병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고령화 사회의 기본 체력을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러한 분야가 공감을 얻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서 힘도 나요. 제가 배운 것을 사회와 공유하고 정책화하며 더 많은 후학을 키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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