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자신 있게, 하지만 자만하지 않기 2022.01.17

소아청소년심장과 차슬기 교수

 

 

“소아 심장은 정말 작습니다. 그 속에서 카테터가 방향을 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어렵죠. 성인 환자에 비해 시간도 더 필요하고요. 익숙한 대로, 욕심나는 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걸 항상 기억하려 합니다.” 선천성 심장 질환과 중재적 시술을 다루는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심장과 차슬기 교수는 ‘혹시 나빠질 수 있는 원인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오늘도 환아 앞에 선다. 

 

아이들의 회복을 지켜보는 특권

소아 환자들의 심장 구조나 형태, 조합은 제각기 다르다. 진단명 자체도 많을뿐더러 선천성 질환의 모든 상황을 예상하거나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공의 시절 보호자에게 ‘지금은 안정적인 상태’라고 설명한 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경과를 거쳐 사망에 이른 영아 환자를 잊을 수 없다. 절대 자만하지 말자는 다짐도 그때부터였다.

좌심실형성부전증후군을 앓는 신생아가 급히 실려온 적이 있다. 대동맥을 담당하는 좌측 심장이 작은 희귀 기형으로 보통 3차례 수술을 진행한다. 외국의 경우에도 1차 수술 생존율이 60%에 불과하고 국내 성적은 그보다 낮았다. 더구나 이 환아는 저체중이어서 심장질환의 예후가 좋지 않고 판막 상태도 불안한 최악의 조건이었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무사히 퇴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모에게 정보를 최대한 전달하면서도 긍정적인 약속을 했다. 그리고 심장 모양이 어떤 타입인지,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개념을 잡아 소아심장외과에 설명했다. 투약과 심부전 치료는 4개월간 이어졌다. 그 사이 아기는 중환자실에 여러 번 다녀갈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차 부교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2차 수술 후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아이를 보면서 정말 기뻤어요. 사실 저는 조금 도왔을 뿐 아기가 스스로 이겨낸 거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제 일의 특권일 겁니다. 특히 복합 심장 환자는 성인이 되어서도 소아청소년과의 치료를 받기 때문에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의 미래까지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의사가 존경하는 의사’가 꿈

차 교수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한 뒤 한 달간 경험한 심장과는 중환자가 많고, 태어나자마자 진단이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는 분과였다. 생체 징후가 흔들리는 환자가 있으면 불안감에 집에도 가지 못했다. 심장과는 무척 어렵고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소문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중압감이 클수록 평정심을 갖고 대처하는 선배들을 보며 선뜻 소아청소년심장과로 진로를 굳혔다. ’나도 저런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019년 서울아산병원에 와서는 소아 심장 중재적 시술의 대가인 김영휘 교수를 만났다. 많은 술기를 배우며 지식과 경험이 더해져 자신감을 쌓을 수 있었다. 동시에 어린 환자를 대하는 신중하고도 다정다감한 자세를 배웠다. “제 최종 꿈은 ‘의사가 존경하는 의사’가 되는 겁니다. 그 속에는 실력뿐 아니라 인격을 갖췄다는 뜻이 담겨있죠.”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간호팀 김정아 과장은 차 교수의 평소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회진 때 보채는 환아가 있으면 회진 후에 다시 돌아와 아이를 다독거리며 직접 진정시키고 가세요. 친근한 성품은 같이 일하는 전공의나 간호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금한 것을 부담 없이 물을 수 있는 교수님이시죠. 심장 그림까지 직접 그려가며 성심성의껏 설명해주신다니까요!”

  

아이들의 삶과 환경을 보다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서 두 달을 보내고 심장 수술을 받은 신생아의 초음파를 볼 때였다. 엎드린 자세로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어서 “아이 좀 잡아 주세요” 간호사에게 요청했다. “제가 아직 아기를 안아본 적이 없어서….” 마침 면회 중이던 아기 엄마가 자신에게 한 요청인 줄 알고 답했다. 차 교수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죄책감과 두려움을 감지했다. “이제까지 보호자의 감정을 놓쳐왔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실제로 부모의 감정은 아이의 치료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의 중압감까지 제가 돌봐야 할 부분이죠. 너무 힘든 부모님들은 자신의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에 연결하는 등 최대한 부모의 마음도 살피려고 합니다.” 

 

질병 너머 환아의 삶을 보려는 노력은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시술이나 수술 직후의 교정과 회복에 맞춰져 있던 연구를 장기적 예후를 통한 삶 전반의 질적인 부분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지, 평생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은 없는지 누군가는 끝까지 지켜봐야죠. 아이들은 제게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좋은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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