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1,000명의 천사 아이들을 만나다 2022.03.15

어린이병원간호팀 최은석 전문간호사

 

▲ 2011년. 소아청소년간호 국제심포지엄에서 소아암 환자의 장기 예후 연구를 발표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최은석 전문간호사.

 

 

서울아산병원 최은석 전문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첫 번째 환자부터 지금까지 1,000여 명의 환자와 만났다. 2001년부터 사용한 전화번호는 20년째 그대로다. 이식 환자들에게 중요한 순간마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핫라인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아이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동분서주해왔던 이야기를 들어본다. 

 

1994년 서울아산병원 입사 때부터 소아 환자들을 간호하셨죠?

아이들을 간호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기를 잃은 아이들과 예민해진 부모님을 대하는 일은 예상과 조금 달랐죠. 무섭기도 하고 자존감도 낮아졌어요. 간호가 익숙해지고 제 경험과 지식을 나눠드릴 만큼 시간이 쌓이면서 일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99년 성인 병동 무균실로 파견 간 적이 있습니다. 쓰다듬고 달래는 간호 방식에 “저는 애가 아니거든요?”라던 환자가 기억나요. 저는 어쩔 수 없는 소아과 간호사였던 거예요. 예상보다 성인 파트 근무가 길어지면서 사직까지 생각하고 소아간호를 하고 싶다며 진상을 부리기도 했습니다(웃음). 결국 1년 반 만에 소아종양혈액파트로 돌아와 전문간호사로 발령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며, 보람도 있으니 천직을 만난 거죠.

 

 

▲ 2013년 146병동 리프레시 데이에 코스프레를 한 의료진과 함께.

2001년 소아종양혈액과 전문간호사가 되면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처음엔 아무런 자료나 공간도 없었어요. 미국에 연수를 가서 우수한 장비와 인력, 풍부한 교육 자료를 보고 충격을 받았죠. 의욕적으로 온갖 자료를 챙겨왔어요. 그리고 각종 교육과 보호자 관리, 이식 후 관리 등의 시스템을 세팅하는 데 참고했죠. 9년 뒤, 미국 연수를 다시 갔을 때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어 배울 것도 없었어요. 우리 간호사들의 역량과 그동안의 헌신을 실감했죠. 환자를 돌보느라 바쁜 간호사들을 대신해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최신 지견을 도입하는 방안을 찾아 나섰습니다. 역할이 확장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소아종양혈액과 전문간호사도 탄생했죠. 

 

20여 년간 소아암 치료의 획기적인 변화를 실감한 적이 있으세요?

조직적합성이 일치하는 공여자를 찾지 못하면 속수무책인 시절이 있었어요. 일가친척 110명의 조직적합성 검사를 받아온 부모도 있었죠. 그래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서 환아는 결국 사망했고요. 2000년 이전에 몇몇 병원에서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도했지만 부작용이 심해 접은 상태였습니다. 2004년에 부임한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임호준 교수님이 부작용을 없앨 세포제거술을 도입하면서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세포제거술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오래 걸렸어요. 처리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해 환자 곁을 지키는 입장에선 매번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독일과 러시아에서 직접 세포처리기술을 배워왔습니다. 타 기관에 의존하는 대신 밤새워 세포를 처리하며 시간을 단축했어요.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한 연구도 병행했죠. 진단검사의학과에서도 검사 시간을 대폭 단축해줬습니다. 소아 반일치 이식은 최고의 팀워크를 이뤘다고 자부합니다. 지금은 조혈모세포 이식의 절반 이상을 반일치 이식으로 진행합니다. 기술이 없던 시절, 살리지 못한 아이들이 가끔 생각나요. 그저 안타깝죠.

 

 

▲ 2019년 1월. 러시아 연수에서 기념 촬영.

새로운 업무를 확장해 온 요인이 있을까요?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엄마, 아파서 미안해”라는 인사를 남겨요. 천사 같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되죠. 코로나 이전까지는 소아종양혈액 환아들의 생일잔치, 여름 캠프, 완치 잔치가 열렸어요. 제가 일 년 중 가장 크게 웃는 날이었습니다.  

자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아버지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가 약해서 이렇게 된 거니까요. 많은 선생님이 열심히 간호해 준 걸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의 과정을 같이 하며 도움과 위안이 된 걸 느낄 때마다 간호사가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 서울아산병원 임호준 교수와 함께 치료를 마친 환아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나요?

2년 전, 조혈모세포와 림프구의 양에 따라 이식 후 합병증이 달라진다는 해외 연구를 보고 우리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했습니다.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임상에서 더욱 안전한 치료에 힘을 보탤 수 있었어요. 전문 분야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제 역량도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20년간 소아암 완치율이 높아졌으니 제가 만난 환자들의 합병증 관리와 장기 예후를 연구해보고 싶어요. 

병원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 제가 남은 시간 동안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이미 남다른 사명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지치지 않고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를 소망하죠. 후배 간호사들이 전문가로 인정받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2011년. 소아청소년간호 국제심포지엄에서 소아암 환자의 장기 예후 연구를 발표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최은석 전문간호사.

2013년 146병동 리프레시 데이에 코스프레를 한 의료진과 함께.

2019년 1월. 러시아 연수에서 기념 촬영.

서울아산병원 임호준 교수와 함께 치료를 마친 환아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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