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함께 성장하고 도전하며 배운 것 2022.04.15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조유숙 교수

 

             ▲ (좌)2012년 알레르기내과 의국원과 함께. 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조유숙 교수   ▲ (우)알레르기내과 교수진. 문희범 교수, 조유숙 교수, 권혁수 교수, 송우정 교수, 김태범 교수.

 

1992년 인턴으로 서울아산병원 근무를 시작한 알레르기내과 조유숙 교수는 현재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의생명연구소와 신약개발지원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다. 환자들과의 밀도 있는 소통으로 치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가 하면 중개 연구에 대한 욕심을 연구소의 시스템을 다지는 역할로 확장해왔다.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 지난 30년을 회고했다.

 

1992년 인턴의 눈으로 본 서울아산병원은 어땠나요?

본과 3학년 강의 때였어요. “현재 국내에는 감마나이프가 없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 딱 한 대가 있었는데 수해로 잠기는 바람에….” 교수님의 이야기에서 앞서가는 병원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됐어요. 실제로 남·여 구분 없이 균등한 기회를 주고 수련 과정이 좋은 병원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저에겐 꽤 중요했던 요소여서 졸업 후 서울행의 목적지가 됐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 와보니 모두 자기 일에 실력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새벽에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연락하면 방사선사님이 바로 달려왔습니다. 시스템도 잘 갖춰졌지만 협조적인 분위기였던 거죠.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다른 병원에 간 친구들이 서울아산병원만의 장점이라고 하더군요.

 

알레르기내과의 성장 과정도 궁금합니다.

제가 입사할 때는 알레르기, 류마티스 분야가 ‘면역내과’에 속했습니다. 주로 진료하는 질환이 면역 질환이니 맞는 이름이긴 하지만 환자들은 과 이름만 보고 어떤 질환을 보는 곳인지 잘 알지 못했어요. 에이즈를 치료하는 곳이냐고 묻는 환자도 있었고요. 그래서 ‘알레르기류마티스내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어서 초전문병원을 지향하고자 문희범 교수님, 유빈 교수님께서 분과 결정을 내렸습니다. 독립적인 살림과 인력 확충으로 알레르기내과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레르기내과 진료는 호흡기내과와 천식 환자군이 많이 겹쳤습니다. 그래서 호흡기내과와 알레르기내과로 이루어진 국내 유일의 천식·COPD센터를 출범시켰습니다. 환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고 통합적이고 전문적인 질환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또 김헌실 간호사가 장기적인 팔로우업이나 각종 교육 등의 실무를 전담해주면서 진료 서비스 수준도 높아졌고요. ‘환자 중심’의 변화인 거죠.

 

▲ (좌)2017년 천식·COPD센터 동료 전임의들과 함께. 왼쪽 두 번째가 조유숙 교수. ▲ (우)2017년 만성기도폐쇄성질환 국제학술심포지엄(Airway Vista)에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조유숙 교수(왼쪽).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스스로 느낀 변화나 성장이 있나요?

꾸준한 치료로 천식 증상이 많이 좋아진 환자가 있었어요. 오랜만에 온 환자의 얼굴이 좋지 않아 소화기내과에 의뢰했는데 위암이 이미 진행된 상태였어요. 곧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얼마 후 환자의 아들이 찾아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교수님께 꼭 인사드리라고 당부하셨어요. 살아 보니 몇 년 동안 천식 걱정 없이 살게 해준 사람이 참 고마웠다면서요.” 더는 함께할 수 없어 미안하고, 저를 기억해줘 고마웠습니다.

심리적인 솔루션을 드리는 것으로도 치료 효과를 볼 때가 많습니다. 처음엔 환자들의 속상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됐어요. 주방에만 서면, 혹은 집안의 벽난로를 보면 기침이 난다는 환자의 이야기에서 증상 뒤편의 환경이나 심리를 보게 됐죠. 환자들의 행동과 말투에서 행간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많이 는 것 같아요.

 

의생명연구소와 신약개발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계시죠?

중개 연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11년 이기업 교수님이 의생명연구소장으로 취임하면서 “내과에는 중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적으니 내 일을 좀 도와달라”라는 요청에 보직을 맡게 됐어요. 제 연구만 들여다보다가 시야가 크게 확장됐습니다. 연구 실용화를 위한 연구소의 역할을 고민하게 됐고요. 원활한 연계를 위해 작년부터 신약개발지원센터 소장까지 겸하게 됐습니다.

연구소에서 필요한 사람들을 설득해서 조직화하고 과제를 정해 일을 추진하는 과정이 저와 잘 맞는 걸 일하면서 알게 됐어요.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이 나올 때가 많아서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죠. 저에겐 소장으로서 각종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웃음).

 

가장 큰 성취를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서울아산병원이 2013년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고 3개의 육성 과제를 연속으로 지원받게 됐을 때예요. 이전에 2번을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던 터라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됐어요. 김종재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님의 진두지휘 아래 전략적인 접근을 찾아갔죠. 연구기획관리실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시스템으로 운용 가능한 주제를 잡고 몇 개월간 수십 명이 준비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처음에는 대형 회계법인에 맡겨야 했던 부분도 경험에 확신이 서면서 세 번째 과제는 내부에서 해결했습니다.

매 순간 서울아산병원만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걸 느껴요. 인턴 때의 설렘과 자부심이 저에겐 여전합니다. 그건 모든 직원들 덕분이에요. 간혹 예전의 서울아산병원 분위기와 비교하지만 서른 살을 넘긴 서울아산병원에 걸맞게 변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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