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환자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병원에선 단순히 바쁘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현장에서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밀폐된 공간에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그래서 업무를 정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내가 한 일을 돌아볼 수 있어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오전에 못했던 기록을 하면서 하나하나 리뷰하다 보면 내가 현장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환자의 과거력을 알게 되기도 하고 여러 연유로 상처 치유가 지연되고 있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나만의 습관이 아니라 신입간호사 시절부터 선배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부터다.
주어진 일만 잘하면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신입간호사 시절, 인계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선배간호사님이 “이 환자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하며 고민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면서도 마음 속으로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궁금해진 나는 선배가 간호 순회하는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담즙 배액관이 짧아서 환자가 불편해 하는지 확인하고, 불편하다면 조금 더 길게 해주고 세심하게 고정해주며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교육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단순히 배액양상과 막히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내 업무에 충실했다고 단정했는데 정작 대상자가 불편한 부분은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의료진의 사명
또 다른 선배는 근무를 마치고 나면 환자의 전반적인 기록을 리뷰했다. 누구도 시킨 것이 아닌, 본인의 의지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 것이었다. “근무 중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일과 후에 기록을 보게 되면 가끔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환자가 오심을 자주 호소하는데 약물 부작용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상의해 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 또 한 교수님은 불철주야로 항상 환자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환자, 보호자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태에 대해 의견을 드리면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작은 것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듯이 나도 선배들이 하는 말투, 행동들을 따라 하며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간 것 같다.
업무를 마치고 그날 일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은 막연히 선배들을 따라하던 신입간호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서로의 업무 패턴을 동료들과 이야기하던 중 동료들도 나처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선 상황을 돌이켜보고 내가 당연하게 판단한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후 우선순위에 따라 환자에게 어떤 중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이런 상황을 또 겪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오늘 내가 놓친 점이 있었다면 다음에는 보완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간호상황 돌아보기’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사고의 과정을 살펴보니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사고의 패턴과 매우 유사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야 말로 서로를 성장시키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계속해 왔던 일상이기에 기록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머리 속의 회로에서 반사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했던 사고의 흐름을 표현하자니 막연히 어떻게 했다는 기억만 있지 그 당시 상황에서 내가 어떤 생각과 말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올해부터 나는 동료 전문간호사들과 우리의 사고과정을 간략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에세이 형식으로 남기는 것이 어렵다면 표로 도식화해서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하려는 취지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기억은 흐려지지만 글로 기록이 된다면 이는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 우리가 현재에만 집중한다면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고민하는 지금의 우리를, 미래는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일하는 의료진으로서 소명이자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암병원간호1팀
여현정 대리
암병원간호1팀 여현정 대리는 2008년 입사해 2016년부터 상처장루실금 전문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전문간호사회 교육학술분과 리더를 맡고 있으며 환자·간호사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