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2021 나의 성장일지 2022.06.01

 

전교 120등으로 시작한 고등학교 생활은 3학년 들어 1등으로 올라섰다. 모두의 주목도, 가고 싶은 대학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도 즐거웠다. 대입 성적에 반영되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기숙사 계단을 오르는 데 숨이 찼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자 “장연호! 공부만 하니까 힘을 못 쓰지~.” 친구들은 낄낄대며 앞서 올라갔다. 체력 저하에 이어 발열과 오한, 빈혈 증세도 나타났다. 동네 내과에선 대학병원으로 당장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나중에요. 다음 주가 시험이에요!” 

 

6월 30일, 백혈병 환자가 되다

“서울로 가보자.” 전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백혈병을 진단받은 뒤 아버지의 차에 올랐다. 내가 꿈꾸던 목적지와는 점점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기분이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실망한 표정을 본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강성한 교수님은 지금 불안한 건 당연하다며 완치가 가능한 병이니 걱정말라고 했다. 골수이식에 대비해 임호준 교수님으로 담당이 바뀌고 ‘고위험 의약품’이라고 적힌 항암제를 주입했다. 백혈병 환자들의 글을 찾아 읽으며 잔뜩 겁을 먹었는데 막상 항암 치료는 참을 만했다. 첫인상이 차가웠던 임 교수님이 “괜찮지?”라고 물을 때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잘 헤쳐나갈 용기가 났다. 언제 끝날지 모를 치료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했다.

 

8월 1일, 인생 최고의 생일

눈을 뜨자마자 수분 섭취 배설량 기록표에 귀여운 낙서가 보였다. ‘생일 축하해. 행복한 하루가 되자!’ 간밤에 강혜지, 서유리 선생님이 쓰고 간 메모였다. 점심에는 영양팀에 미리 신청해 준 생일 미역국이 나왔다. 수액을 확인하러 온 신지윤 선생님은 쇼핑백을 건넸다. 예쁜 모자가 담겨있었다. “다른 환자들은 예쁜 모자를 쓰는 데 연호만 위생모를 쓰는 게 마음에 걸려서.” 항암 치료를 받고 듬성듬성해진 머리를 위생모로 감춰왔다. 병원에선 볼 사람도 없으니 달리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삭막한 건 병실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강성한 교수님과 김지윤 전공의, 완화의료팀의 이은옥 선생님은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동안 절망스러울 때마다 햇살나무 상담실을 찾곤 했다. 그리고 내내 울었다. 오늘은 그분들이 나를 찾아와 실컷 웃을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일요일에도 회진 온 임 교수님의 생일 축하가 연달았다. 이렇게 따뜻한 생일은 처음이었다.

 

8월 24일, 어린이 병동의 기쁨과 슬픔

항암이 끝난 지 2달이 다 되도록 혈액 수치가 오르지 않았다. 의료진과 가족이 화상으로 치료 계획을 상의했다. 혈구 수치가 오르길 기다리다가 다른 감염이 생길 수 있으니 이식을 서두르기로 했다. “완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 교수님의 마지막 인사는 화상 화면이 꺼진 후에도 진한 잔상을 남겼다. 그동안 찜찜했던 마음을 뚫어주는 주문이었다. ‘우리 교수님 정말 멋지다!’            

슬픈 소식도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같은 병실을 썼던 혁이가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중환자실에 갔던 혁이의 이름이 다른 병실에 적힌 걸 보고 안심했는데, 혁이는 그때 마지막 고비를 지나고 있었나 보다. 환자가 되기 전까지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 혁이가 아픔 없는 곳에 잘 도착해 새로운 친구들과 힘차게 뛰놀기를 기도했다.

 

9월 11일, 꿈을 꾸는 긴긴밤

수시 원서를 내보기로 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으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읽고 생각을 다듬어 주었다. 대입과 취업에 성공한 선배님들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래도 합격은 힘들 거예요.” 단념 섞인 말투에 서유리 선생님은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책으로 위로했다. 변호사를 꿈꾸는 나에게 맞춤인 책이었다. 편지도 담겨있었다. “수험생 때 서울대에 간 친구가 부러웠어.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친구가 간호사 꿈을 이룬 나를 부러워하곤 해. 너의 꿈에 집중해봐. 응원할게!” 늘 좋은 대학만이 목표였는데 내가 꿈꾸는 인생을 그려보며 긴긴밤을 보냈다. 

 

10월 25일, 나를 바꾸는 시간

무균실에서 이식 전 항암을 시작했다. 골수 내의 모든 세포를 없애는 과정은 말로 할 수 없이 괴로웠다. 모든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우니 토가 나왔다. 자세를 바꿔도, 앉아도 계속 토하는 바람에 주변을 온통 더럽혔다. 하루에만 20번의 구토와 6번의 설사가 계속됐다. 입부터 장까지 모든 점막이 헐어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자 위액과 담즙을 쏟았다. 엉망진창의 하루하루를 버틴 끝에 11월 1일, 동생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다.

 

12월 3일, 시원섭섭한 마침표

“내일 퇴원할 수도 있겠는데?” 혈소판 모세포가 정상임을 확인한 최은석 선생님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간호사분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질수록 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퇴원을 돕던 강우엽 선생님이 “보고 싶겠지만 그래도 보지 말자!”라며 반년 간의 입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퇴원 후 별다른 숙주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치료 내용을 쓰는 날은 점점 줄었다. 오랜만에 펼친 지난 일기에는 힘든 나날을 모두 가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반짝였다. 든든한 임호준 교수님, 주치의가 아닌데도 끝까지 챙겨준 강성한 교수님, 엄마 같은 최은석 전문간호사님, 골수 검사를 두려워하는 걸 알고 “연호는 내가 할게”라며 매번 직접 검사해준 고영권 교수님, 내 미래를 응원해준 7~12월의 전공의분들, 천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146병동 간호사·조무사분들, 나약해진 마음을 경청으로 치유해준 햇살나무 선생님들까지. 배움과 성장은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하고 싶은 공부가 달라졌고 돕고 싶은 이들이 생겼다. 일기를 덮으니 예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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