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몰입과 용기 2022.07.15

흉부외과 유재석 교수

 

 

 

“심장 수술을 할 때는 암벽 등반을 하는 기분이에요. 한 발만 미끄러져도 안 된다는 긴장과 몰입이 엄청나죠. 평소엔 생각이 많은데 수술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요.” 서울아산병원 유재석 교수에게 뛰고 있는 심장을 수술하는 건 해도 해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문제를 풀고 싶어진다. “가장 필요한 자질은 용기인 것 같아요.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해보기 전까지 모르죠.”

 

오랜 꿈, 심장 수술

어릴 적 의대생이 주인공이거나 병원 소재의 드라마를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의료기기 관련 일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심장 수술과 관련된 국내·외 자료가 항상 쌓여있었다. 접촉면이 늘수록 꿈은 구체화됐다. 그러나 흉부외과 의사의 꿈을 이루기도 전에 흉부외과 환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인턴 때 다제내성결핵 환자로부터 결핵이 옮아 폐엽절제술을 받게 된 것이다. 병원을 떠나 회복까지 2년이 걸렸다. 체력 문제로 흉부외과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마음이 가리키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첫 환자를 수술했던 날 밤에 잠을 못 이뤘어요. 생사를 눈앞에 둔 강렬한 경험이었고 정말 뿌듯했거든요.”

서울아산병원 이재원 교수에게 최소침습 심장 수술을 배웠다. 다른 외과 분야에서는 흔하게 쓰이지만 심장 분야에서는 보편화되지 못한 수술법이다. 심장은 계속 뛰는데 대동맥과 같은 큰 혈관을 화면만 보고 수술하기란 쉽지 않아서다. 유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기존의 다빈치 로봇 수술보다 비교적 저비용, 저인프라에서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3차원 내시경 심장 수술을 시도했고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국내 최소침습 심장 수술을 개척하고 전파한 것이 이재원 교수님이라면 저는 완전 내시경적 최소침습 심장 수술 보급에 힘쓰면서 우리나라 심장 수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함께 쓰는 드라마

서울아산병원에서 펠로우로 근무할 때의 환자 경험은 최근 방영된 의학 드라마의 소재로 쓰였다. “‘로이-디에츠 증후군’을 앓던 경미라는 아이였어요. 대동맥 파열로 쓰러지는 바람에 전신마비가 된 케이스였죠. 의사로서 도울 방도가 별로 없었어요. 수녀님만 가끔 찾아오는 걸 보고 고아인 걸 알게 됐습니다. 다가가서 “외롭지?”라고 물으니까 경미가 눈을 깜빡였어요. 그래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죠. 경미의 말벗이 되어줄 분을 찾는다고. 고맙게도 열댓 명의 자원자가 면회 시간마다 돌아가며 찾아왔어요. 죽기 전 몇 개월만큼은 덜 외로웠을 거라고 믿어요. 그즈음 제가 첫 아이를 얻고 중환자실에 갔을 때 경미가 ‘딸 낳은 거 축하드려요’라고 입 모양으로 말해주던 모습이 기억나요. 저도 그때 경미에게 참 고마웠거든요.”

서울아산병원을 떠나 부천세종병원에서 보낸 6년간의 경험은 의사로서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었다. 혼자서 수술한 환자를 돌보며 모든 결정과 책임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심장이 매우 안 좋은 환자에게 에크모를 달아야 하는데 환자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무수혈로 장기간 에크모를 지속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유 교수와 중환자실 간호사 모두 설 연휴에도 긴장 상태로 환자에게 집중했다. “20여 일의 에크모 치료를 버틴 끝에 환자가 건강해져 퇴원할 때 저도 함께 성장한 기분이 들었어요. 안될 것 같아 보여도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수술만큼 중환자 치료의 중요성도 알게 됐고요. 제 환자를 전적으로 돌보면서 느낀 걸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어 서울아산병원으로 돌아왔죠.” 

 

의지를 따르는 태도

심장 판막 질환을 오래 앓아온 환자들은 수술 후에도 중환자실에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심장이 전신에 피를 잘 보내지 못해 심장 이외의 다른 혈관이 수축하면서 패혈증에 이르기도 한다. 언제든 환자의 생사가 뒤바뀔 수 있어 매 순간 예민해진다. 유 교수는 한때 자신의 예민함을 단점으로 여겼다. “예민함은 유지하되 무례함을 경계하자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웃음).”

응급 수술이 먼저인 생활을 두고 아내가 종종 묻는다. 환자의 죽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느라 일상을 흘려 버리는 건 아니냐고. 유 교수는 일과 일상의 밸런스는 계속될 숙제이지만 지금은 환자가 먼저라고 여긴다. “서울아산병원의 일원이라면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처럼 일에 몰두해야 할 것 같아요. 훈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선수를 누구도 워커홀릭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어떤 환자든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현역 선수처럼 달려 보려고요.” 의대생 시절, 의사에게는 착함과 의지, 겸손이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며 유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착함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고, 겸손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게 해요. 그렇게 의사가 되어가는 거겠죠.”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