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You are as old as you feel’ 2022.07.15

신경과 이재홍 교수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예쁜 장식모자를 쓰고 안동 하회마을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하면서 화사하게 카메라에 대고 웃는 표정이 기억에 선하다. 그때 그 분의 나이가 73세였다. 그런데 작년에 영국 윈저궁(Windsor Castle)에서 개최된 국제투자정상회의 연회에서 ‘올해의 노익장(the Oldie of the Year)’상 수상을 점잖게 거절해 화제가 되었다. 그분 말씀은 자신은 수상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바로 “you are only as old as you feel”. 덕분에 수상자는 5살 연하인 90세의 미국 배우에게 돌아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과연 그럴까?  아무리 실제 나이(chronological age)와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가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너무 정신승리를 외치는 구호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부쩍 노인과 노화에 대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대화해본다. 전공이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이니 노년의 뇌 건강을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했지만 다 이론으로만 환자들을 통해서만 해왔다면 이제는 내 자신의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것이다. 전에는 노인의 기준이 65세였지만 지금은 도무지 실감할 수가 없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고 늘 주위에 젊은 전공의들에 둘러 싸여 망각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몇 년 후의 나에게 노인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가 보다. 얼마 전에 나온 정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8명은 ‘70세 이상’이어야 노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인의 기준이 65세로 정해진 것은 평균 수명이 50세 미만이던 19세기 후반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한 인위적인 기준이라고 하며 지금으로 치면 무려 90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총 인구의 30%에 가까운 초고령사회 일본은 우리의 참고서라고 할 만 하다. 아직 권고사항이기는 하지만 70세 정년시대를 얘기하고 있고, 일본 노년학회는 한술 더 떠 고령자 정의를 75세 이상으로 끌어올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유는 최근 20년간 노인들의 노화 속도가 늦춰져 생물학적으로 5∼10년 젊어졌다는 것이다. 반대의 시각도 있다. 사람이 70세쯤 되면 쇠약해지는데 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혈액 구성이 단순해지고 골수의 줄기세포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몸의 생태계가 손상에 대한 대응 능력이 빈약해지는 것이고 그러면 면역체계도 약해지고 모든 장기의 기능도 떨어지니 노화는 불가피한 자연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일이 정해진 틀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나이보다 유난히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스스로 나이 먹었다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llen Langer라는 Harvard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수도원에 7080 노인들을 모아 지금이 마치 20년 전인 것처럼 생활하도록 했다. 그 시절의 음악을 틀고 영화나 잡지, 포스터를 여기저기에 비치해둔 것은 물론이다. 노인들은 대화 주제는 물론 실제 생활도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쓰레기 봉투를 내다버리고 짐도 직접 나르고… 처음엔 완강히 저항하던 노인들은 일주일이 지나니 모두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몸을 썼고 대화와 토론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악력이 세지는 등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노화에 대한 편견이 있다. 활동적인 운동은 자제하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다치지 않도록 피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말이다. 이러한 사고는 의식 체계 전반에 스며들고 영구적인 형태로 자리잡는 것이다. 마치 부정적 사고의 늪에 빠진 것과도 같아 결국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해내지 못하게 된다. 즉, 노화에 대한 편견이야말로 사람들을 더 늙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굴복하지 않고 편견을 깨는 것이야말로 신체 나이를 앞당기는 비밀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늙는다’는 것은 바른 현실 인식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착각일지도 모른다. 물잔에 물이 반쯤 차 있을 때 비워진 반(half empty)을 보고 상실감과 공허함을 느낄 수 있지만 채워진 반(half full)을 보고 삶에 대한 가능성을 보면서 충일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삶은 선택인 것 같다.

 

치매(따지고 보면 뇌의 노화라 할 수 있는) 예방을 위한 생활 수칙 중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you are what you eat’가 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 즉 내가 평소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나를 만들고 나의 뇌건강이 결정된다는 의미인데 당분이 많고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는 가운데 나의 뇌세포가 빨리 노화되고 사멸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물론 이런 음식을 한 두 번 먹었다고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행위가 반복되고 습관이 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독일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당신은 몇 살입니까?” 주관적인 나이(subjective age)를 묻는 간단한 질문인데 결과는 놀라웠다. 자신의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기억력 점수가 높은 것은 물론 인지 저하 위험성이 더 낮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비슷한 연구에 의하면 심지어 대뇌 피질도 이런 노인들에서 더 두꺼워져 있다는 것이다. 나이보다 젊게 느끼는 것은 뭔가 손상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혹은 건강한 습관을 키워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subjective age-chronological age gap도 한계가 있어서 80대 이상에서는 단순히 젊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 신체 건강과 이어지는 연관성은 약해지고 두 가지 나이가 20살 이상 차이가 나면(이 정도 되면 착각은 자유라지만 정도가 너무 심한 수준이 아닐까) 앞서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불완전하고 때로 위험하다. 오래 전에 상영됐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지금은 잘 나가지만 그때만 해도 무명 배우였던 ‘납득이’ 조정석이 순진한 주인공에게 연애학 개론을 펼치고 나서 “이제 납득이 되냐?” 했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납득만 돼 가지고는 모자라고 ‘체득’이 돼야 비로서 가능해지는 일이 좀 많은가! 단순히 ‘내가 나이보다 젊다’라고 자기 세뇌만 시켜서는 곤란하고 ‘젊은 나’를 유지하기 위한 위한 꾸준한 운동, 사회적 교류, 두뇌 활동을 이어나가며 이를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반복적으로 실천하여 그야말로 daily routine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감히 엘리자베스 여왕의 품격 있고 위트 있는 대사를 이렇게 고치고 싶다.

‘You are as old as you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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