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끈기 있게 끝까지 2023.08.30

 

소화기내과 오동욱 교수가 내시경 시술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다. 담석을 계획대로 제거했지만 췌장염이 심해진 환자는 고통을 호소했다. “환자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문제인 걸 이해했고 저도 후속 치료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힘들어하니까 저도 마음이 무척 힘들더라고요. 그때 그 시술을 한 게 맞았을까 자꾸 복기하게 되고요. 한창 제 실력을 자신할 때 저를 겸손하게 만든 사건이었어요.” 지금도 치료를 결정할 때 신중하게 묻는다. ‘내 시술이 필요한 환자일까. 내 도움이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두려움에서 시작된 꿈

“재수까지 하면서 의대에 갔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잘 몰랐어요. 돌아보니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제가 4살 때였어요. 회식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하셨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저를 이 길로 이끈 것 같아요.” 한때 드라마틱한 수술로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는 외과 의사를 꿈꿨다. 그러나 결국 선택한 건 환자를 마지막까지 돌볼 수 있는 내과였다. 대신 시술을 많이 하는 소화기내과의 췌·담도 파트로 향했다. “우리 병원 교수님들이 워낙 세계적인 수준이다 보니 배우면 배울수록 환자를 온전히 책임지기에 제가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딱 1년만 더 있어 보자, 조금만 더 배워보자 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오 교수는 담관암이나 췌장암 환자의 좁아진 담관에 관을 넣어 담즙을 배출시키는 내시경 시술을 자주 하고 있다. 나날이 중증도는 높아지고 환자 수도 크게 늘어서 일상의 피로나 긴장감이 항상 높다. “그런데 치료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요. 제가 치료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환자들이 호전되는 과정을 쭉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퇴직한 교수님께서 ‘젊을 때는 환자가 일로만 보이기 쉬워도 모두를 애틋한 마음으로 돌봐야 한다’라고 당부하셨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항상 친절하기는 어렵겠지만 환자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췌장이나 담도 시술은 아무리 조심해도 출혈이나 천공, 합병증이 유발되는 경우가 있다. 췌석을 제거할 때 협착이 동반되어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고 돌을 깨는 과정에서 넣었던 기구가 빠지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10분 이내에 끝나는 시술이 2시간 가까이 소요될 때도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하다가 진이 다 빠지면 다시는 안 하고 싶죠.(웃음) 그래도 항상 차분하게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거든요. 한 번에 안 되면 다른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하고요. 우리 병원마저 포기하면 환자에겐 또 다른 기회나 희망이 없을 테니까요.”  

흔히 췌장에 문제가 생기면 죽을병으로 오해한다. 모두 중환인 건 아니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잘라 말하곤 했다. 2년 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환자와의 대화와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기 건강검진에서 췌장 쪽에 뭔가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바로 MRI 검사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사흘 동안 입이 바짝 마르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방이 껴 있던 것으로 판명이 난 뒤에야 진정이 되더라고요. 췌장을 치료하는 나조차 이렇게 무서운데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을 알고 나니 예전처럼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최대한 공감하고 쉽게 설명하려고 신경 쓰는데 환자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담도암을 무사히 이겨낸 환자에게 그간의 투병일지를 엮은 책을 선물 받았다. 진료실에서는 미처 알 수 없던 환자의 생생한 일상과 생각이 담겨 있었다. 또 한번 환자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아산병원의 일원이라는 무게

나날이 무거워지는 책임감은 환자들의 기대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해외 학회에 나갈 때마다 남다른 시선과 기대를 체감한다. “내가 아는 나는 그만큼이 아닌데, 서울아산병원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아요. 앞선 교수님들이 닦아놓은 기반인 거죠. ‘내 만족에 멈춰 있으면 안 되고 세계적인 실력과 기준에 걸맞도록 노력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오 교수는 환자나 연구 주제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경험하고 있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생각이다. “다양한 경험 끝에 제가 조금 더 여물었을 때 한 분야에서 매년 꾸준한 결과를 내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더뎌도 끈기 있게 끝까지 실행하는 스타일이에요. 누가 찾아와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대가가 될 때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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