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정확한 원인에서 답을 찾다 2023.08.30

 

“경동맥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다리 혈관이 막힌 곳까지 발견해 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장딴지가 붓고 걸을 때마다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졌어요.” 환자가 보낸 편지에는 회복의 기쁨이 담겨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범준 교수는 환자들을 만나면 즐거운 순간이 많다. 침대에 누워 이송됐던 환자가 걸어서 나가고 혈압이나 혈당 등 안 좋았던 지표가 목표한 범위 안에 들어갈 때가 그렇다. “뇌경색을 치료하면서 가장 좋은 건 환자들에게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환자를 보며 꿈을 꾸다

의사가 되기로 한 건 고등학생 때 지하철역에서 경련을 하며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서다. 돕고 싶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119에 전화한 뒤 매스컴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기도를 확보했다. 이내 구조대가 도착하고 환자는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응급 상황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의사가 되면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의대에 진학했죠.”

흔히 의학은 외울 게 많아 힘들다고 하지만 그만큼 재미도 무궁무진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길을 걷다가도 ‘왜 저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끊임없이 질문하셨어요. 당시에는 정말 싫었는데 어느새 제 사고 패턴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의대에서 신경과 질환의 증상과 원인을 찾아 치료에 적용하고 증명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거든요. 특히 복잡하게 연결된 뇌 회로는 다양한 증상마다 정확한 인과 관계가 있었어요. 뇌 질환이 생긴 패턴이나 혈관 모양을 보며 논리적인 원리를 찾아 처방하면 예상대로의 결과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신경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환자 맞춤형 치료

같은 뇌졸중이라도 원인은 다양하다. 혈관이 좁아져서, 심장에서 날아간 혈전 때문에, 조그마한 혈관 하나가 막히는 등의 원인에 따라 치료 방향도 크게 달라진다. 다른 병원에서 뇌경색의 원인을 찾지 못한 환자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일반적인 뇌경색 치료만 받다 보니 호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김 교수는 뇌경색이 여러 군데로 흩어져 있고 왼쪽 심방이 커진 것을 보며 숨어있는 심방세동을 의심했다. 몇 달간의 집요한 추적 검사 끝에 예상한 대로 심방세동을 밝혀냈다. 그에 맞는 약을 결정하면서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뇌경색으로 입원한 환자분들이 검사를 많이 하는 이유를 묻곤 합니다. 뇌경색 치료는 원인을 정확히 밝혀서 최적화된 치료를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예상 방향에 따라 검사 내용도 다 다르고요.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한 과정인 거죠.” 실제로 국내 데이터에 따르면 뇌경색의 20%는 원인 불명인 데 반해 서울아산병원은 7~8%에 불과하다. 그만큼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정확한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최근 3D프린터를 이용해 혈관 모양에 따른 전단 응력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뇌경색의 원인과 기전을 밝혀 환자에게 맞춤 치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학자인 아버지에게 평소에도 혈류 역학적인 문제를 자주 여쭸어요. 그러면서 공학자들과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의학과 공학 간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잘 아는 의사, 질병을 잘 아는 환자

뇌경색이 여러 번 재발하는 환자들은 그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간혹 사소한 이유로 약을 중단했다는 환자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약을 끊으면 재발 위험이 3~4배 높아지기 때문이다. “충분한 고민 끝에 결정한 약이고 약의 부작용이 장기적인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다른 약으로 교체할 수 있어요. 당장의 증상 개선만이 목표가 아니라는 걸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치료 과정에서 많은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김 교수는 환자들이 들고 온 외래 진료 안내서의 뒷면을 적극 활용한다. 그림을 그려 설명하며 환자의 검사 수치와 목표 수치, 처방약의 의미 등을 모두 적는다. “환자가 자기 몸을 제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진료실을 나서는 순간 설명 내용을 까맣게 잊게 되죠. 처방한 약의 효과와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대처를 충분히 설명하며 적어드리고 있어요. 환자가 치료의 한계를 알고 장애가 남더라도 잘 생활하실 수 있도록 미리 교육도 하고요.” 환자와 가족들은 급성 뇌경색으로 경황이 없고 질병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을 때 김 부교수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 것을 가장 고마워한다. “환자 입장에서 느끼는 도움이나 감사는 꼭 의학적인 부분에서만 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의사가 얼마나 환자를 이해하고 고민했는지를 보는 거죠. 환자의 치료 의지로도 연결됩니다. 그렇게 쌓인 신뢰 관계가 의사로서 느끼는 자부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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