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호른으로 삶의 원리를 배운 정희원 교수 이야기 2024.05.10

 

펀더멘탈을 기르는 연습의 중요성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과를 중시하고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는 강하지만 연주자로서의 내재적 펀더멘탈fundamental은 취약한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더러 있다. 흥미롭게도 이 문제는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엘리트 스포츠 영역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관찰되며, 취미로 음악을 즐기거나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펀더멘탈에 대한 노력을 아끼는 것이다. 필자의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서는 이 현상을 이동성mobility에 대한 내재역량의 올바른 구성과 취약한 구성의 사례로 비교했다. (그림)
악기의 세계에서도, 설령 매일 꾸준히 연습하더라도 선율이 있는 부분 또는 연주가 잘 되어 흥미로운 부분만을 연습하는 이들이 많다. 마치 러닝이 재미있으면 러닝을 더 하고, 축구가 잘 되고 재미있으면 축구를 더 하는 것과 같은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자세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으로 펀더멘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취약한 부분, 연습하기 불편한 영역의 연습 비중을 늘려야 한다. 기술자technician와 예술가artist의 측면 모두에 있어 더 나은 연주를 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살펴보고,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잘 되는 것만 계속하다 보면 기초가 부족한 ‘사상누각형’ 연주자가 된다.


호른을 취미로 하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연습은 무엇일까? 우선 ‘톤 연습’이다. 가장 정확한 음정과 풍성한 음색을 낼 수 있도록 한 음을 오랜 시간(예를 들어서 4초나 8초씩) 집중해 연주하는 것이다. 최저음에서부터 최고음까지를 반 음 간격으로 오가며, 피아니시모(가장 여리게)부터 포르티시모(가장 크게)를 포함한 음량으로, 아주 부드러운 호흡 어택, 레가토, 마르카토, 스타카토 등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연습을 하다 보면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두 번째로는 기본적인 ‘테크니컬 스터디’이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호른은 한 가지 키를 잡으면 수십 개의 음이 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연주하면 미스 톤을 만들기 쉽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 음에 정확하게 진입entrance하는 연습,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전이lip-slur하는 연습을 비롯해 아르페지오arpeggio, 립 트릴lip-trill 등 수많은 테크닉을 연습해야 한다. 문제는 취미로 호른을 연주하는 대다수가 이런 ‘도움이 되지만 재미없는 연습’은 피하려 든다는 것이다. 일단 일주일에 한 시간도 연습을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데다 간혹 연습을 한다 해도 펀더멘탈 연습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듣기 참혹한 음색과 무지막지한 빈도의 미스 톤이다.


악기를 오랫동안 즐겁게 연주할 수 있으려면 연습 루틴을 잘 짜는 것이 좋다. 예컨대 하루에 한 시간을 연습하기로 계획했다면 첫 20분은 웜업, 그다음 20분은 테크니컬 스터디, 마지막 20분은 곡 연습으로 채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펀더멘탈 개선에 도움이 되는 루틴은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런 연습을 피하는 나쁜 습관을 들이면서도, 오케스트라에 나가서는 한 판 신나게 ‘불어 젖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기본기를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합주를 하면 입술과 주변 근육에 불필요한 긴장이 생기고 때로는 부상을 입기도 한다. 결국 악기 실력은 더 곤두박질치고 마는 것이다. 특히 호른은 기본기 연습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다 보니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며 연습과 연주에 흥미를 잃고 몇 년 지나기도 전에 악기를 접는 경우가 많다.

 

 

성장을 돕는 ‘일견 비효율적인’ 노력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는 분야를 더 깊숙이 파고들어 연구의 전선research frontline을 확장하는 것이 주요한 일이지만,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진 취약한 요소들이다. 새로운 것을 공부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 중에는 사람들이 비효율적이라고 치부해 잘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종설이나 단행본 등 누군가가 소화해 놓은 지식뿐 아니라 1차 자료에 가까운, 소화되지 않은 자료까지 찾아 들어가 전문가들이 지난 수십 년간 어떤 걸 발견했고 어떤 생각을 전개했는지 조망해 보고 머릿속으로 마인드맵을 만드는 것과 같은 훈련이 그러하다. 이런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해 보는 것은 연구자의 식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넓힐 수 있는 방법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외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텍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에 수많은 이들이 열광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현실은 지식의 요약을 거듭해 만든 교과서에서 키워드만 다시 한 번 모은 ‘족보’를 위주로 시험 대비 암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시험을 무사히 넘긴다는 한 가지 과업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이전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와 논리로 연구의 전선을 넓혀 왔는지까지 알기는 어렵다. 반대로 일견 번거롭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사실관계와 전문가들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 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생각의 틀을 만들 수 있고 지식의 형성 과정에 깔려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을 읽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생각의 격자틀latticework을 만드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하다”는 투자자 찰리 멍거Charlie Munger의 말처럼, 당장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비효율적인 노력이 결국 튼튼한 펀더멘탈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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