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 배려의 시작 2024.09.13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힘들어도 웃을 수 있어요.

- 내과간호2팀 윤아연 간호사 -

 

<Dall-E 제작>

 

 

김명자(가명) 님은 급성 뇌경색으로 뇌졸중 집중치료실에 입원했다. 혈관 경색으로 지속적으로 팔 힘이 약화돼 혈압을 높게 유지하는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해당 치료가 시작되면 혈역학적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침상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 치료 기간 동안 활동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환자들의 변비를 해결하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근무 때 만난 할머니는 7일째 변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약물 치료를 통해 서서히 팔 힘이 좋아져 자연스럽게 식사량이 늘었지만 활동량은 여전히 부족한 탓이었다. 변비 때문에 다른 질병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기저귀가 익숙하지 않아 변을 보기 어렵다고 해서 담당의와 상의해 좌약을 투약했고 이동식 변기를 준비해 드렸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다행히 대변을 많이 보았다. 나는 병실에서 변을 본 환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너무 잘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라며 박수를 치면서 격려해드렸다. 할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남이 똥 싼 걸 보고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이네!”라며 웃기 시작했고 보호자인 따님과 나까지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졌다. 뇌경색 이후 갈수록 힘이 빠지는 본인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해 우울해 하던 환자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뻤다. 변비 상태가 지속되면 환자와 의료진 모두 회복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큰 걱정을 덜었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점차 근력을 회복한 할머니는 고위험 약물을 중단하고 퇴원 후 재활병원에서 추가로 재활을 하기로 했다. 퇴원 전날 할머니의 따님이 나를 찾아와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라며 예쁜 글씨로 작성한 편지와 간식을 건넸다. 환자의 검사 안내문 뒷장에 편지를 적은 것이었는데 종이가 없어 여기에 마음을 담아 적었을 보호자의 모습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특별하게 잘 해드린 것이 없었기에 그 감사한 마음이 오히려 송구스러웠다.


“엄마가 대변을 보았을 때 민망하지 않게 배려해주시고 입원 생활 내내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같은 훌륭한 의료인이 우리나라를 더욱 밝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라는 칭찬과 감사의 내용이 편지에 적혀 있었다. 그저 담당 간호사로서 진심을 다해 일했을 뿐인데 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한 요즘의 나에게 새로운 의지를 불어넣어 주는 소중한 편지였다.


신규 간호사 시절에는 정규 업무를 해내기에도 벅차 배설 간호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기저귀 가는 것이나 도와주고… 이런 일 하러 온 게 아닌데…’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중 첫 번째인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특히 신경계 환자들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위약감과 대소변장애로 많은 불편감을 겪고 그 과정에서 우울한 감정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신경과 병동에서 근무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환자의 질병 회복만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우선순위대로 해결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환자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에 힘들어도 웃으며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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