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산책>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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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 살아도 여전히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율적이다.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여긴다고 해도, 그들의 애교는 충직한 개가 보여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 집 고양이 ‘행복이’를 예로 들어보자. 행복이는 우리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려고 하면 어디선가 바로 나타나 옆에 자리 잡고 앞발로 우리를 조심스럽게 건드리기 시작한다. 참 귀엽지만, 실상 이는 자신을 쓰다듬어 달라는 신호다. 기꺼이 만져주다가 잠시 멈추면 앞발로 다시 건드리는데, 그래도 이 집사들이 TV만 계속 본다면 곧 자리를 떠나버린다. 때로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가로막기도 하고 글을 쓰는 종이 위에 떡 하니 앉기도 한다. 고양이는 자신이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 우리의 전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고양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고양이가 북아프리카 혹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고양이는 인류가 농경사회로 접어들며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할 때 쥐를 퇴치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영입’된 동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인 이유와는 별개로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사랑과 풍요의 여신 하토르Hathor 혹은 모성의 여신 바스테트Bastet의 화신으로 숭배했다. 왜 그랬을까? 고양이는 서로 쓰다듬고 애무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특히 암고양이는 발정기에 여러 수고양이의 관심을 받으며 많은 새끼를 낳는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의 이런 방종함에 대해 너그러웠고, 다산성을 높이 평가해 이를 자비로운 모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특성은 중세 유럽에서 정반대의 평가를 받았다. 중세 성직자들은 단체 생활과 금욕을 강조했기 때문에 고양이의 이런 자유로운 행동을 혐오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고양이에 대한 혐오는 단지 그들의 방종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 집 행복이를 매우 좋아하지만, 밤중에 그녀가 내는 높은 울음소리를 들으면 낯선 느낌을 받곤 한다. 이는 마치 달빛 아래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생경함과 비슷하다. 세로로 길쭉한 모양으로 생긴 동공이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꼬리를 보면 뱀 같은 파충류가 연상된다. 고양이는 우리와 같은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계에서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고양이는 우리와 함께 집에서 살지만 여전히 자연의 일부이며, 언제든 문을 열어주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분석심리학에서는 밝은 빛 뒤로는 그림자가 생긴다고 본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개인성과 내재된 동물적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간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이 점점 더 ‘위대’해진다 할지라도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크고 그 요소들은 인위적인 도덕의 경계를 넘어선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잔혹한 일일 수 있지만 자연 속에서는 살기 위해 죽여야 하며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된다. 현대인은 이러한 자연
에서 점점 멀어지며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핸드폰과 모니터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어릴 적 자주 보던 어머니가 생선 배를 가르고 피가 흐르는 내장을 제거하던 장면도 이제는 보기 어려워지고 우리는 깔끔하게 포장된 음식 재료들만을 접하게 됐다. 자연은 우리에게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이러한 문명의 그림자를 투사한다. 고양이는 쥐를 잡는 유익한 동물이지만 그들이 사냥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인간은 불편함을 느낀다. 고양이는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자연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자유로운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양이는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마녀의 하수인으로 여겨져 참혹한 핍박을 받았다(마녀사냥과 고양이 학대는 긴밀히 연관된 사건이다).
현대에 들어 여성의 권리와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면서 고양이는 인간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고양이를 불편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길고양이와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소위 ‘캣맘’에 대한 혐오, 나아가 길고양이를 학대하거나 죽이는 사례들이 그 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나는 여전히 우리 한국 사회가 집단적이며, 그래서 낯선 것과 다른 것에 대한 수용과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고양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우리에게 자연을 상기시키며 현대 문명 속에서도 본능을 잃지 않은 귀중한 존재로서 우리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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