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고양이와 정신건강 ③ 고양이? 말설이는 그대에게 2025.12.20

<이야기가 있는 산책>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

 

(AI 활용 일러스트)

 

지난 글을 읽고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하신 분이 있었다. 이번 글은 그렇게 고양이를 집에 들일지 망설이는 분에게 드리는 글이다.


첫째, 배우자나 배우자가 될 사람과 고양이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미혼 여성이라면 상대 남성이 당신을 ‘아이 없는 고양이 아가씨childless cat lady’라며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다른 지나치게 씩씩하고 고양이만 아는 여성이라 오해할 수 있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쉽게 눈물이나 쏟는 나약한 남성이라 취급 받을 수도 있다.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고양이는 매우 독립적인 동물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개와 고양이를 비교하며 “개는 더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그리고 나쁘게 대할수록 더욱 잘하려고 애쓰며 아첨하는 노예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한 번 잘못 대하면 그 순간부터 당신을 멀리하고 다시는 전적인 신뢰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조심성 없게 고양이를 만지거나 쓰다듬으면 진저리를 치며 도망가는 일이 흔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물기까지 한다. 그래서 편한 점도 있다. 개처럼 매일 산책을 시켜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고,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훈련하지 않았다고 해서 대소변을 아무 곳에나 보는 일도 없다. 고양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대소변을 가리며, 좁은 아파트에서도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고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개를 키우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고양이와 함께 사는 데 어느 정도 각오는 필요하다. 특히 어린 고양이를 키운다면 말이다. 어린 고양이는 생명력 그 자체이며 마치 바람 같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고양이에 관한 다양한 글을 남겼는데, 우리가 잘 아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캣츠>가 그의 글에서 탄생했다. T.S. 엘리엇은 그의 작품 <맥커비티: 미스터리 고양이Macavity: The Mystery Cat>에서 고양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 중력의 법칙도 어겼어요. 고양이의 공중부양 능력은 귀신도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범죄 현장에 도착하면 이미 고양이는 거기 없지요. …

 

어린 시절의 행복이도 자기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이의 손잡이 문을 마음대로 열었다. 숨바꼭질을 좋아해 옷장으로 숨어 들어가 옷들을 털 범벅으로 만들곤 했다. 그 외에도 중력에 의한 자유낙하 놀이를 무척 즐겼다. 책장 위로 올라가 책을 모조리 바닥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한밤중 ‘와장창’ 소리에 놀라 거실로 나가보면 유리컵이 바닥에 박살 나 있기도 했다. 물론 행복이는 항상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에 우리는 행복이가 범인이라는 심증만 가질 뿐이었다.


둘째, 경고하건대 고양이를 기르는 가정에서는 반드시 가족 간 이견과 불화가 생긴다. 도대체 이 고양이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양이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누구도 고양이에게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행동 임에도 강아지처럼 “손!” 하면서 고양이를 훈련시키는 배우자에게 “그러니까 고양이한테 사랑을 못 받는 거야”라고 말하다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살고 있다니”라는 푸념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고양이에게 매료된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고양이를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눈 주위의 검은 테두리를 따라 그리는 고양이 마스카라를 흉내 내곤 하지 않는가? 고양이의 앙증맞은 핑크빛 콧잔등은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고양이의 그 어떤 행동도 완전히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물론 아주 드물게 고양이만큼 멋진 외모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양이는 항상 그들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 고양이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환상을 깨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바로 ‘죽음’이다. 고양이의 수명은 아무리 길어도 20년을 넘기 어렵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 글을 쓰며 코리안 쇼트테일의 평균 수명을 찾아보니 행복이는 이미 통계적으로 살 수 있는 수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행복이가 다리를 절더니 관절염 진단을 받았고, 이제는 테이블에 오르거나 문을 여는 일도 하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약간의 턱을 앞에 두고 신중히 저울질하며 엉거주춤 내려간다. 앞서도 말했듯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씩씩한 존재라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마음 아프다.

 

어린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와 고양이.

 

그러나 나이들었다고 해서 행복이가 그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상실한 것은 전혀 아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고양이 ‘단쯔’를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책을 썼다. 그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 중 늙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어렸을 적 학교를 마치고 오면 늙은 암고양이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햇볕 아래 처마에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태양의 온기를 머금은 늙은 고양이의 털이야말로 생명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했다. 나 역시 나이 든 행복이가 내 배 위에 올라타서 그르렁그르렁 거리는 것을 느끼며 생명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경험한다.

 

나에게는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심한 우울증을 경험하고 치료 받으러 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 더불어 지내던 존재가 사라진 빈자리는 견디기 어려운 상실감을 남기고, 생명과 삶의 무상함을 깨닫는 동시에 실존적인 위기를 경험하게 한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영원히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과, 생명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지, 동시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수용과 이별의 과정을 겪는 일은 고통스럽다. 나 역시 행복이가 없는 집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행복이가 없다면 콧물, 코막힘 같은 알레르기 증상도 사라지고, 옷이나 소파에 묻어 있는 고양이 털도 없어 깨끗할 것이다. 새벽마다 귀찮게 일어나 밥을 챙기고 모래를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가 없는 집은 무언가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것이 빠져버린, 아아 ‘행복이가 없는’ 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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