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안정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내과간호2팀 173 유닛 박정혜 과장 2025.04.10

안정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내과간호2팀 173 유닛 박정혜 과장 -

 

▲ 서울아산병원 내과간호2팀 173 유닛 박정혜 과장

 

2009년에 입사해 정형외과 병동에서 5년을 보낸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안정병동으로 발령받았다. 8시간 동안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환자, 자기 물건을 훔쳐 갔다고 의심하는 환자, 퇴원을 요구하며 물건을 부수는 환자들로 초반 6개월은 정신적인 방전 상태에 가까웠다. 매일 악몽이 이어졌다.

 

“그런데 환자와의 면담에 훈련이 된 까닭인지 이곳 교수님과 동료 간호사, 조무원 모두가 경청과 공감으로 저를 끌어줬어요. 정신건강의학과라는 특성 때문에 힘들면서도 그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던 셈이죠.”

 

말주변은 없어도 듣는 일에는 자신 있어 환자들의 심리적인 치유 과정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더불어 치료 프로그램 간호사가 되기 위해 전문적인 수련 과정을 이수하고, 전문간호 석사과정을 밟으며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안정병동의 이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들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어울려 탁구를 치고 보드게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환자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증상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간호 활동의 일환이다.   


면담을 통해 환자의 증상 정도를 파악해 그에 따른 간호를 제공하고, 차모임·작업치료·음악감상 등 환자들의 정신 재활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 운영, 병동의 전반적인 검사와 입퇴원 업무를 총괄하는 등의 구체적인 간호 업무를 수행한다. 간호사와 조무원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이벤트에 대비해 15분마다 병동을 순회하고 CCTV 등으로 환자 상태와 안위를 살핀다. 


조울증, 우울증, 조현병 등을 앓는 환자들은 자기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 자살이나 자해를 불시에 시도하곤 한다. 난폭한 환자가 주를 이뤘던 예전과는 환자 양상이 사뭇 달라지면서 간호사의 중재도 달라지고 있다. 삶의 의미와 살아야 할 이유를 환자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가족도 잘 받아주지 않던 마음을 병동 간호사와 나누는 자체로도 환자에겐 치료적 의미를 갖는다.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간호사는 일종의 치료 도구가 될 수 있어요. 환자에게 해줄 게 많다는 점은 계속 공부하고 재미를 느끼며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일 거예요. ‘한 환자의 인생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면서요.” 

 

▲두윤숙 유닛 매니저와 CCTV 환자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처음 입원하는 환자가 병동에 도착했다. 박정혜 과장은 첫 환대를 가장 신경 쓴다. 환자 대부분이 복잡한 입원 과정을 거쳐 안정 병동에 들어선 순간, 두렵고 낯선 불안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이때 라포를 잘 쌓으면 앞으로의 치료와 병동 생활이 보다 수월해진다. 간호 활동에서 면담을 가장 중점에 두지만 개개인의 상황과 증상이 모두 달라 매뉴얼화하긴 어렵다. 남에게 내보이기 힘든 우울과 환청 등의 증상을 꺼내 놓을 수 있도록 간호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엔 환자들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랐어요. 우울한 사람에게 오늘 기분을 물어보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죠. 싸우는 환자들을 말리다가 국물이 담긴 식판으로 맞은 적도 있어요. 

 

다행히 6개월이 지나니까 제가 먼저 환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더라고요. 그 후에는 제가 하는 면담이 치료적인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솔직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닐까 의심도 들었거든요.

심리상담을 전공하고 정신전문간호사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뿐 아니라 새로 온 간호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환자와의 면담은 어렵습니다.” 

 

▲ 면담할 때는 환자에 집중하고 면담 이후에 환자의 증상 내용을 작성한다.

 

자해 충동은 환자의 의지로만 이겨내기 어렵다. 격리와 강박 조치 이전에 면담이나 약 복용, 운동, 사소하게는 종이 뜯기를 권하기도 한다. 면담에서 환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여겨진다. 또 환자가 충동적인 상황을 무던히 넘길 때면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은 보람을 느낀다. 가족관계나 성장 과정, 인생 전반을 두루 나누며 환자들의 문제를 차차 이해하게 된다. 


“예전에 정형외과 병동에서 간호할 때는 민첩함이 중요했어요. 이곳에선 엉덩이가 무거워야 해요. 환자가 인생 이야기를 꺼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충분히 기다려주고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차츰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요.

제가 아이를 유산했을 때 환자들이 느꼈을 우울감이나 무기력, 소진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것을 더 알게 될 지, 어떤 이야기를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을지 기대돼요.” 

 

▲ 치료 프로그램은 다양한 내용의 시간표로 구성된다. 박정혜 과장이 미술 치료를 진행하는 모습. 

 

박 과장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정신 재활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의 하나로 오전을 여는 차모임이다.

프로그램실의 커튼을 활짝 열고 어울리는 음악과 차를 준비하는 시간부터 큰 힐링이 된다. 환자들과 둘러앉아 오늘 기분은 어떤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갇힌 공간이긴 해도 작은 자유를 선물하는 것만 같다. 


“최근에 퇴원한 환자가 그러더라고요. 이곳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면담으로 환자를 이해하려는 간호사들이 있어 다른 병원과 뭔가 다르다고요.

정신질환은 혈압이나 당뇨처럼 계속 조절하며 입퇴원을 반복하게 돼요.

오랜 시간 익숙해진 얼굴로 환자들에게 안정감 있는 간호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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