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임상미생물 유닛에서 PCR 검사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임상병리사는 중학교 시절 병원에 갔다가 처음 알게 된 이후 쭉 꿈꿔온 직업이었다.
6개월 후 임상화학 유닛으로 발령받아 요검사 파트에서 소변 속 세포, 결정, 원주, 세균 등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요침사 검사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처음엔 소변이 제 손에 묻을까 봐, 특유의 냄새에 불편한 마음도 있었어요. 지금은 하나의 검체로만 여겨져요. 오히려 작은 수치 하나, 슬라이드 한 장이 누군가의 회복과 안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책임감이 들 뿐이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자의 상태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내 의료진의 적절한 치료를 돕는 일. 진단검사의학팀을 ‘병원의 조용한 엔진’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임상화학 유닛 요검사 파트는 7명의 임상병리사가 하루에 1,500여 건의 소변 검사를 진행한다. 소변은 여러 대사산물을 포함하고 있어 요로계 이상뿐 아니라 전신적인 내분비 질환, 대사 질환, 전해질 이상을 비롯한 각종 질환을 선별하는 데 간단하지만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질병 진단의 시작점이자 치료 방향을 설정하고 질환을 관리하는 데에도 의미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소변 검사로는 요시험지 검사, 요침사 검사, 요화학 검사, 소변 배양 검사 등이 있다. 요침사 검사의 경우 검사자의 관찰이 직접 결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높은 책임감을 요구한다. 소변 속 구성 성분은 서로 유사해 보이기도 하고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정확한 판독과 오류를 줄이기 위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검사 결과가 모호할 때는 서로 의견을 나누고 참고 자료를 활용해 보다 정확한 리포트를 작성하는 데 신중을 기한다. 검사자 간의 결과 편차를 줄이고 일관성 있는 보고와 검사 신뢰도를 확보하고자 주기적으로 자체 블라인드 테스트도 하고 있다.
“진료는 환자를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되지만 정확한 진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준비됩니다.
하루에 처리하는 수백, 수천 건의 검사에 오류가 없도록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자분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만큼은 진료과와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이거 교과서에서나 보던 건데!” 김지혜 주임은 현미경을 한참 들여다봤다.
정육각형 모양의 시스틴 결정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동료에게 보여주자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선 학교 실습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하고 다양한 케이스를 종종 만난다. 검경한 그대로 결과를 보고하기 때문에 낯선 모양의 결정체가 나오면 임상과에서도 되물을 때가 있다. 이러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진료과로 연계되기도 한다.
“예전에 제가 결과 보고할 때 놓친 부분이 있어 지적을 받은 적이 있어요. 되도록 많은 검체를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온 제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 있었죠.
그때를 기점으로 매일 열심히 공부했어요. 팀에 구비된 책을 한 권씩 빌려다가 최대한 많은 그림을 눈에 익혔고요.
검체를 직접 보고 선임이 보고한 결과와 같은 결과를 냈는지 내용을 맞춰보며 감각을 키웠어요. 업무가 익숙해진 뒤로는 다양한 검체 이미지를 캡처하고 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요검사 파트에 처음 온 분들이 전반적인 내용을 빨리 파악할 수 있게끔요.”
▲ 김나현 임상병리사(오른쪽)와 검경 결과를 보며 결정 형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검체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중에도 검사의 정확도 관리는 철저하다. 작은 오차에도 예민할 수 있어 장비 업체에 점검을 요청할 때가 많다.
“이 정도로 많은 검사량이면 고장 나지 않는 게 신기하죠”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김 주임은 요검사 파트의 인증 평가를 준비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정도 관리에 더욱 신경 쓰고 있다. 올 연말에 있을 CAP 인증도 이미 준비를 시작했다.
“요검사 파트에서 4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한때는 다양한 파트를 얼른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한 분야를 깊이 경험하며 지식을 쌓는 이 시간이 의미 있게 느껴져요. 인증평가를 준비하면서 반복적인 검사 업무에선 알기 어려운 부분과 정도 관리 등을 두루 공부할 수 있어 시야도 한층 넓어졌고요. CAP 인증 과정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지만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소변 색깔이나 최소 소변량에 대해 묻는 환자가 많다. ‘아메리카노를 마신 직후인데 괜찮을까요?’라고 적힌 소변컵을 수거한 적도 있다.
한 환아 어머니가 울먹이는 얼굴로 신관 외래 요검사실 에 찾아왔을 때다. “이걸로 검사가 가능할까요?” 진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한다면서 아주 적은 양의 소변을 담아온 것이다. 최소 소변 검체량에 미치지 못해 장비 검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고는 직접 현미경으로 검사해 빠르게 결과를 보고했다. 이후 검사실에 다시 들른 어머니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제시간에 진료를 볼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환자와 대면할 일이 적어 평소에 잊고 지내던 것이 있었어요. 빠른 검사 결과만으로 누군가에게 큰 안심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요. 가끔씩 덕분에 빨리 진료를 보고 외래도 지연되지 않았다는 환자나 의료진의 인사를 받곤 해요. 그러면 무뎌진 마음에 조용한 자부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