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는 응급처치로 인한 소생도 이루어지지만, 더 이상 회복을 예상할 수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말기 질환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과정인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다. 그 옆에서 임종 간호를 하다 보면 가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글을 쓰는 오늘은 음압격리실에서 임종기 환자 두 분을 간호했다.
개방적인 침상이 대부분인 응급실은 사적이고 조용한 임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종종 격리실에서 임종 면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임종 면회는 2인씩 교대하며 이루어진다.
한 분은 폐질환으로 인한 의식 저하로 인공 기도 삽관이 필요한 상태였다. 하지만 환자의 예후와 고통을 고려하여 기도 삽관은 시행하지 않고 산소마스크만 적용한 상태로 임종 면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환자의 의식 상태는 통증에도 전혀 반응이 없는 ‘Unresponse(무반응)’였지만, 환자의 곁에 있던 딸은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걸고 계셨다. 연명 의료 중단과 관련된 서류 작성을 위해 딸 2명과 배우자, 사위 모두가 잠깐 응급실에 들어오셔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우리 아빠 눈 떴다”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눈을 껌벅껌벅 뜨고 계셨다. 부르는 말에는 반응이 없었으나, 통증 자극에는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다른 보호자들이 떠난 후에도 환자의 딸은 손자로 보이는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지속적인 음성 자극을 주고 계셨다. 그 덕분인지 환자는 ‘오른쪽 옆을 봐주세요’라는 말에 옆을 보고, 어렴풋이 눈도 마주쳤다. 가족의 힘 덕분에 환자는 의식이 조금 호전되어 임종기 케어를 위한 전원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바로 옆 격리실에 계시던 환자는 췌장암 말기 여성 환자였다. 환자의 의식 상태는 본래 또렷하여 호스피스 치료를 위해 연고지인 포항으로 전원을 문의했지만, 점차 상태가 나빠져 전원을 미루고 종양내과 입원 결정이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혈압과 산소포화도 측정이 어려워 우리 병원 입원마저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가족들이 거의 다 도착했으니, 30분만 버틸 수 있게 해주세요.”
작은 딸의 울먹이는 소리에 종양내과 의료진 확인 후 승압제를 최대로 증량했다. 혈압이 잘 측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눈에 초점이 없다가도, 의식 확인을 위해 내가 이름을 부르면 환자는 내 눈을 바로 쳐다봤다. 잠시 후 먼 길을 달려온 큰 딸과 아들 내외, 배우자께서 신속하게 두 명씩 교대하면서 임종 면회를 진행했다. 모두가 울음바다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작은 딸은 “엄마 보려면, 한 명씩 교대해야 해.” 내가 안내하기도 전에 환자의 가족들은 차분히 교대하며 환자를 만났다. 코로나 이후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면회가 모두 끝나자 환자는 지친 듯 눈에 초점이 없었고, 부르는 말이나 통증 자극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임종이 다가온 환자들은 말도 없고 뚜렷한 반응도 없지만, 누군가는 옆에 있는 가족들의 말과 힘으로 눈을 뜨게 된다. 또 누군가는 가족들이 오고 있다는 한 마디에 조용하고 묵묵히 버텨낸다.
응급실은 응급한 환자가 먼저이기에 임종기 환자와 가족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자는 매순간이 마지막일 것이고, 그 가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정신없고 시끄러운 응급실에서의 임종의 순간에, 잠깐이라도 그들이 눈을 보고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나누려면, 응급실 간호사로서 어떤 행동과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까.
임종 상황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임종기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면, 바쁜 응급처치 중에도 자연스럽게 표정과 말투를 점검하게 된다. 너무 힘든 표정 짓지 않는 것. 너무 큰 목소리로 응대하지 않도록 하는 것. 틈틈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주름진 시트를 펴고, 덮어드리는 것. 편안한 체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보호자에게 의자를 내어주면서 최대한 조용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보호자의 문의 사항에 성의껏 답변 드리는 것.
응급실에서는 심정지, 의식 저하, 호흡곤란 등 수많은 환자들의 응급상황으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누군가 평생 잊지 못할 한 장면을 위해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응급실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라는 마음 가짐으로 오늘 하루를 마친다.
응급간호팀
고준호 주임
응급간호팀 고준호 간호사는 환자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함께하며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인 응급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매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환자의 회복을 돕고 동료들과 협력하며 배워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들, 간호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고민, 그리고 응급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들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