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칼럼] 따뜻한 마음으로 채우는 병원… “오늘도 폭싹 속았수다” 2025.06.11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유와 박보검 배우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주인공들의 일생을 통해 삶과 가족의 본질을 흥미롭게 그린 작품이었죠. 드라마 제목인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는데, 제주 방언에 익숙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들은 처음에 '완전 속았다'거나 '얼굴이 폭삭 늙었다'는 식으로 오해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 이야길 꺼냈을까요?

 

다름 아닌 드라마 속 '병원' 풍경이 제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병원의 하얀 공간이 이토록 차갑고 낯선, 때로는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곳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노인이 된 주인공이 병원 시스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위축되는 모습은 병원이 나오는 몇몇 장면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병원은 중증 환자 치료와 회복을 위해 효율성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환자분들의 입장을 얼마나 헤아려왔는지 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히 아시겠지"라고 여겨지는 사소한 절차들이 환자분들께는 막막하고 큰 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특히 연세가 있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께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어렵게 질문을 하셔도, 바빠 보이는 직원의 무심하거나 때로는 귀찮다는 듯한 응대에 환자분들은 스스로를 불필요한 존재처럼 느껴 더 깊이 위축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직원들도 사람인지라, 업무가 바쁘거나 반복되는 질문에 같은 답변을 계속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지치거나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만약 홀로 병원에 오셨다가 젊은 직원에게 한숨이나 짜증을 들으시는 대상이 저의 부모님이라면 어떨까 상상하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들 알고 있는 사자성어죠. "자기가 처한 환경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생각을 따라가보며 깊이 공감하는 과정을 의미할 것입니다.


보호자가 없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에서 환자분들은 이런 불편감에 훨씬 더 취약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환자분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어려움을 헤아리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며 응대하려 모든 의료진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쁜 중에도 잠시 숨을 고르고, 환자분의 얼굴을 마주 보며 따뜻한 눈빛을 건네는 것. 환자분의 말에 천천히 귀 기울이고, 궁금해하시는 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리는 것. 복잡한 절차 앞에서 당황하시는 모습을 보면 먼저 다가가 도움을 드리는 것. 이 모든 작은 행동들이 환자분들에게는 큰 위로와 안심이 되겠지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의 간호사들은 질환이나 수술 후에 필요한 교육을 할 때도 환자분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충분히 반복하여 설명해 드립니다. 혹시라도 잊어버리실까 환자별 화이트보드에 그날 그날의 예정된 치료 및 검사 일정 등을 직접 적고 이해하셨는지 확인하며 친절히 설명해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보호자분들의 마음도 챙기기 위해 매일매일 환자의 현재 상태와 치료 계획을 포함한 안심 문자 발송 등 다양한 소통 방법을 활용합니다. 보호자분들께 환자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알려드리고 궁금한 점에 대해 소통하려 노력하며 가족분들의 걱정을 덜어드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간호뿐만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간호를 통해 환자분들이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조금이나마 편안함과 신뢰를 느끼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보호자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차가워 보일 수 있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 나가는 의료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병원간호1팀
김치호 대리

김치호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보호자 없이 환자들이 최상의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이곳에서, 그는 환자들과의 병원 생활을 되돌아보며 ‘이상적인 병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병동에서 마주한 특별한 순간들, 그리고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간호에세이를 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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