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 세계 심장 의학 전문가들이 6층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심혈관조영실의 중재시술이 생중계되자 모두 숨죽여 지켜봤다. 중재시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판도를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주도로 첫 발을 내민 관상동맥중재시술학회는 매년 심장 분야의 뜨거운 논의와 교류의 장이 되었고, 서울아산병원과 한국 심장 분야의 위상을 높였다. 아시아·태평양 최고의 국제 심장학술 행사로 자리매김한 TCTAP의 30주년을 기념해 회고록을 펴낸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석좌교수를 만났다. <편집실>
Q. 석학들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회고록를 발간했다
A. 30년간 TCTAP에서 많은 경험을 나누고 배우며, 삶을 나누는 우정을 쌓아왔다. 초창기에 젊고 도전적이었던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리더로 함께 성장했다. 이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의미로 2만여 장의 사진을 일일이 고르고 글을 적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기억을 만들었으니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자 감사한 인생이다. 그래서 회고록 제목을 ‘GOOD PEOPLE, GOOD MEMORIES, GOOD LIFE’로 지었다.
Q. 당시 신생 병원에서 어떻게 전 세계 석학을 모을 수 있었나
A. 콘텐츠의 힘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시술을 이곳에 오면 볼 수 있었으니까. 좌주간부의 협착에는 우회술이 유일한 치료법이던 시절에 중재시술을 최초로 시도하고 공유했다. 라이브 시술과 패널 토의 등 학술회의 현장은 늘 뜨거웠고 석학들은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무모한 시도로 여겨지던 관상동맥 중재시술은 이제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크레이지(crazy) 박’으로 불렸던 내 별명도 좌주간부(left main)에서 글자를 딴 ‘메인 박’으로 바뀌었다.(웃음)
1995년 당시 라이브 시연은 국내에 선례가 없었다. 의료진과 직원들은 방송 중계팀을 섭외하고, 원내 네트워크 시스템이 없어 3층에서 6층까지 라인을 일일이 연결해야 했다. 자체 영상 편집실을 마련해 교육 자료를 제작하는 등 발로 뛰며 내부 노하우를 쌓고 시스템화했다. 해외 송출로도 이어지면서 학술대회는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Q. TCTAP에서 체감하는 우리 병원의 위상은 어떤지
A. 내부에선 체감하기 어렵지만,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는 세계 심장 전문가들은 우리를 ‘하이 플레이어’로 여긴다. 여전히 우리만 할 수 있는 시술이 있고 그만큼 트레이닝 수준도 높아서다. 2003년 NEJM에 논문을 실은 이래 9번 우리 병원의 이름이 올랐다. 여러 구성원이 계속된 연구 성과를 내며 일군 총체적인 성과다.
모든 성과는 증거 중심의 논문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해 개원 때부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데이터가 쌓이자 논문 작성은 수월해졌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드물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Q. 우리의 과거 원동력은 무엇이고 앞으로 필요한 준비는
A. 정주영 설립자님의 나눔과 섬김의 리더십은 강력한 명분을 주었다. 모두가 환자를 살리는 일에 절대적인 시간과 열정을 쏟았고 집단 지성과 협력으로 이어지며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 됐다. 우리의 결정과 실행이 시대적 요구와 맞닿는 행운도 있었다. 이제는 예전 같은 성장 속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협력하며 ‘팀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쌓고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어 간다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확장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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