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느 날 이브닝 근무를 하던 중 병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에 입실할 환자가 있다는 연락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환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올라간 환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전화로 전달받은 환자 상태는 기관 내 삽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환자가 인공호흡기 치료를 위해 중환자실로 다시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환자를 본 순간 나는 크게 놀랐다. 며칠 전 모습과 지금 상태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전신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환자의 엑스레이,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오른쪽 흉부에 혈흉이 있었다. 급히 흉관을 삽입하고 혈관조영실로 이동했다. 색전술을 받은 이후 출혈은 다행히 멎었으나 여든이 넘은 고령의 환자이기에 앞으로 남은 치료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며칠 뒤 환자는 걱정과 달리 빠르게 회복했다. 기관 내 삽관 튜브도 제거하고 의료진과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라운딩을 할 때마다 환자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의료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의료진에게 별다른 이야기도, 요청도 없었다. 딸이 면회를 왔을 때 “저희 아버지가 원래 과묵하신 편이에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서 나도 환자에게 간단한 인사와 컨디션 정도만 물어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여전히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환자와 또 눈이 마주쳤다. 무료해 보이는 환자에게 다가가 “TV나 유튜브 동영상이라도 틀어드릴까요?”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환자는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병실을 나왔겠지만 사흘 동안 마주친 환자의 눈빛 속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 좀 더 용기를 내 환자에게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집에서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물어봤다. “집에서도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었지”라는 환자의 대답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 한 마디에서 그동안 우리를 바라봤던 환자의 눈빛이 이해가 됐다. 동시에 늘 컨디션만 묻고 곧장 자리를 떴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짧은 대화를 나눈 이후 환자는 나에 대한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는 듯했다. 환자는 젊었을 때 어떤 일을 했었고, 아프기 전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깥 활동을 즐겼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눈웃음을 지으며 한참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환자에 대한 경계가 점차 허물어졌다.
얼마 후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이동했다. 그날 직접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환자가 하루빨리 퇴원해 예전처럼 활기차게 바깥 활동을 즐기며 자녀들과 함께 덜 외롭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 환자를 간호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근무한 시간이 쌓일수록 업무적인 능력은 성장했지만 환자들의 정서도 함께 돌보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위해 먼저 용기를 내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