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주사가 너무 무서워요! 2025.08.27

환아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을 방문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검사를 위해 정맥주사 확보가 필요하다. 협조가 어려운 소아 환자 특성 상 정맥주사 확보는 쉽지 않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번은 꼭 아이를 꽉 붙잡아야 하고 아프게 해야 한다. 아이와 동행한 보호자의 마음도 편치 않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 번 만! 아프게 않게!’를 주문처럼 외우며 정맥주사 확보를 시도한다.

 

환아 연령 마다 접근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2~3살 아이는 “손에 지지 묻었네”라고 하면 손을 볼 수 있게 내어준다. 그러면 “지지 닦아줄게” 하면서 알코올 솜으로 쓱쓱 닦아낸 뒤, “어머! 모기가 엥엥 하네 모기가 물었나봐. 모기가 물어서 아프겠다. 아프지 않게 밴드 붙여야겠네”라고 쉼없이 말한다. 이 연령대 아이들에게는 ‘지지’와 ‘모기’가 제법 통하는 말인 듯 하다. 어떤 아이는 나의 하얀 거짓말을 들으며 모기가 문 자리에 밴드를 붙여준 거라고 생각하고 울지 않는다.

 

어린이병원에서 주사 부위를 고정하는 방수 밴드에는 곰돌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피부 보호를 위한 폭신이(foam silicone) 제품을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루는 정맥주사 확보 후 고정하면서 한 보호자가 “우와! 여기 곰돌이가 있어”라며 우는 환아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곰돌이를 폭신이로 덮어 보이지 않게 하자 보호자는 아이에게 “곰돌이가 이불 덮었어”라고 말해주자 금세 울음을 멈추기도 한다. 그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곰돌이가 있는데 이불도 덮어야지”라고 이야기 한다. 아이가 곰돌이와 이불 이야기에 빠져 조금이라도 아픔을 잊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5살을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이상 ‘지지’나 ‘모기’는 통하지 않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보호자가 아이에게 잠시 검사 준비를 위한 사전 설명을 할 수 있게 시간을 준다. 그러면 좀 전까지 협조가 되던 아이들이 이 때부터 울기 시작하고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쓴다. 반면 너무 의젓하게 ‘형아라서’, ‘언니라서’ 참고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이때 나는 “안 아파”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주사는 아프니까. 대신 ‘우리가 한번은 꼭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해준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 ‘이겨냈다’는 사실을 새겼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어느 날 5살 환아의 혈관 확보가 쉽지 않았을 때, 옆에 있던 소아진정전담팀 선생님이 “이건 하츄핑인가? 하츄핑 좋아해?”하며 말을 건낸 적이 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잘조잘 ~핑, ~핑 캐릭터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번째 시도에서 주사는 다행히 성공했다. 눈물 범벅인 아이에게 “오늘 검사 끝나고 뭐해?”라고 묻자 아이는 눈물을 닦으며 “물고기 보러 가요! 인어공주도 있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동료 선생님이 힘들었을 아이와 공감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나눠주던 그날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주사 맞던 힘든 기억보단 간호사 선생님에게 하츄핑을 설명해주고 아쿠아리움에 갈 수 있던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훈훈한 순간에도 속으로는 ‘진정치료 후엔 하루정도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서 안전하게 쉬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난감했다.

 

MBTI의 ‘대문자 T’ 같은 내 자신이 잠시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동료 선생님에게서 아이에게 주사 맞는 순간의 두려움과 아픈 기억을 희석시키는 노하우를 얻었다. 나는 늘 지금처럼 아이들이 진정 치료 중 경험하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게 돕고 ‘건강히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고 싶다. 서울아산병원 진정치료실 운영 6개월, 20년 넘는 간호 경험을 가진 나 역시 아이들과 보호자와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이 공간이 앞으로도 방문하는 모든 연령의 환아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곁에서 아이를 지켜주는 보호자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늘 이해와 배려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이병원간호팀
박정희 차장

박정희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간호팀에서 소아환자안전 전담간호사로 근무하며 소아환자의 진정치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린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돌봄을 제공합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소아환자안전 전담간호사의 역할을 소개하고, 보다 많은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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