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사진 이야기 ② 미나마타병을 둘러싼 동서양의 시선 2026.01.10

<이야기가 있는 산책>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

 

▲유진 스미스의 '목욕하는 토모코'(왼쪽)와 구와바라 시세이의 '토모코의 성인식'(오른쪽)

 

한 장의 사진이 때로 천 마디 말보다 강하다. 1970년대 초 일본의 한 전통 목욕탕, 희미한 빛 속에서 어머니는 어린 딸 토모코를 품에 안고 있다. 딸의 몸에 선명하게 보이는 미나마타병이 남긴 뒤틀린 상처. 그럼에도 자애로운 어머니 품에 안겨 평온해 보인다. 몇 년이 흘러 기모노 차림의 토모코는 기뻐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성년식을 치른다. 가족과 이웃들은 그녀 주위에 모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동서양 사진가의 사진.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감동을 준다. 미나마타병의 비극을 겪은 이들의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존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사진들은 내가 본 제일 슬프지만 희망찬 사진들이다.

 

 

바다와 마을을 침묵시킨 산업의 비극

1950년대 후반, 조용한 어촌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 질환이 집단 발생했다. 고양이들이 미친 듯이 발작하다 바닷물에 빠져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은 뒤 이상 증세를 보였으며 아이들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뒤늦게 밝혀진 원인은 인근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흘려보낸 메틸수은이었다. 일본 전체 아세트알데히드의 3분의 1을 생산하던 이 공장은 1932년부터 1968년까지 유독성 폐수를 바다에 방류했다. 사람들도 수은이 축적된 어패류를 먹고 중독됐다. (수은은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되지 않고 체내에 쌓이면서 신경세포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 그 결과 신체마비와 발달장애, 시각장애 등 각종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한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화학산업단지가 밀집한 여수와 울산에서 발병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환경 질환의 특성상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신종 전염병이라는 오해, 지역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 기업의 영향력 등–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았다. 회사는 이 문제가 이미 1951년부터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방 정부는 문제없다는 거짓말로 일관하며 오염 사실을 축소하려 했다. 피해 주민들이 소송 등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일부 주민은 오히려 동네 망신이라며 눈총을 주었다. 보상을 노린다는 악의적인 소문도 돌았다. 그 사이 수은 중독 환자와 가족들은 50년 가까이 홀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2001년이 되어서야 2,265명이 공식 환자로 인정되고 1만여 명이 보상을 받았다. 더디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죽음과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운 미나마타시에서 침묵을 깨고 현실을 세상에 알린 것은 두 장의 사진이었다.

 

 

 (AI 활용 일러스트 ⓒ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서양의 눈 : 유진 스미스의 ‘목욕하는 토모코’
1971년 어느 겨울날,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자 유진 스미스는 일본인 아내와 함께 미나마타시의 한 가정집 목욕탕에 들어갔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역사에 남을 사진이 탄생했다. 사진 속 어머니는 욕조 안에서 어린 딸 토모코를 부드럽게 안고 있다. 주변은 어둠 속에 잠겨 있고 창틀 사이로 들어온 빛은 모녀를 조각상처럼 비춘다. 어머니의 얼굴엔 슬픔과 자애가 깃들어 있다. 마치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떠오른다. 이듬해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에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세계인의 양심을 뒤흔들었다. 곧 이 사진은 포토저널리즘의 결정체가 되었다. 전 세계 신문과 잡지에 미나마타병 기사가 실렸고 일본 국민들은 물론 지구 반대편 나라들의 사람들까지 분노하고 연대했다. ‘목욕하는 토모코’는 산업 발전에 희생당한 한 아이와 그 어머니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이 사진은 동양적인 사고로는 찍기 어려운 사진이다. 하지만 토모코의 부모는 딸의 비극적인 모습을 세상에 보이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알릴 수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딸이 가장 존엄하게 보일 방식을 고민해 직접 욕실에서의 연출을 제안했다고 한다. 유진 스미스는 이후 신일본질소비료 측이 고용한 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해 척추 손상과 한쪽 눈 실명의 중상을 입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1978년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동양의 시선 : 구와바라 시세이의 ‘토모코의 성년식’
100회 이상 우리나라를 찾아 독재와 민주화를 카메라에 담은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는 미나마타병이 처음 보고된 1956년부터 수십 년간 현장을 취재하며 피해자들과 동고동락했다. 여러 사진 중에서도 1977년 촬영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성년식 예복을 입은 토모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토모코를 품에 안은 채 밝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이 보인다. 병든 딸은 아름다운 후리소데(성년식 때 흔히 입는 긴소매 기모노)를 입고 있다. 사진 속 분위기는 더없이 슬프면서도 따스하고 희망차다. 토모코는 태중에서부터 수은에 노출돼 평생 말 한마디 못하고 앞도 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부모는 딸이 성인이 되는 날 사람답게 축복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이 사진은 피해자들이 가장 행복하면서 아픈 순간을 담았다. 그리고 미나마타병 환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토모코는 이 사진이 찍힌 그해, 만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침묵을 깨우고, 인간 존엄을 묻다
미나마타병을 담은 두 사진은 내가 본 가장 슬픈 사진이다. 동서양의 시각과 접근 방식이 달랐음에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모아진다. 산업 발전의 그늘에서 비극을 겪은 이들의 슬픔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 고통에 공감하자는 것, 인간답게 살아갈 존엄을 지켜주자는 것이다. 서로 다른 미학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두 사진을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한 어린아이와 가족에게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가?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얼마나 둔감했는가?’


우리나라도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갓 태어난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고 싶은 부모의 노력이 아이와 산모에게 치명적인 폐 섬유화증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어느 사회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 역시 미나마타병처럼 환영받지 못하고 점차 잊혀져 간다. 그래도 우리 병원이 이 병을 처음 찾아내고 기전을 규명함으로써, 누구라도 걸릴 수 있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사실에 병원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갖는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