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병동에서의 인턴십 경험은 입사 후 같은 심장내과 파트인 144병동 근무로 이어졌다.
다양한 파트로 이루어진 심장내과 특성상 각종 검사와 시술에 맞춰 환자별 조건과 상황을 민첩하게 살피고 상의하며 간호를 수행해야 했다.
“신입 간호사 시절,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그해 연말 병동에서 제가 환자들을 웃게 해준다며 작은 상장을 만들어 준 것이 환자를 우선했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큰 힘이 되더라고요.”
서울아산병원의 간호 교육 체계가 철저하고 치료 수준이 높다는 점에서 느끼는 자부심은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다.
어느새 13년이 흘러 지금은 병동의 책임 간호사로 유닛 매니저와 간호사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틈날 때마다 SOP, AGS 등의 각종 규정과 정보를 찾아보며 막힌 업무의 해결책을 얻는다. “규정과 지침이 머릿속에 없으면 불시의 상황에서 빠른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려워요.” 책임과 긍정. 황보현 대리가 현장에서 늘 사수하려는 태도다.
144병동에선 심장내과, 신경과 입원 환자들을 간호한다. 간단한 시술을 받고 다음 날 퇴원하는 환자부터 심부전으로 많은 약을 조절하며 복용해야 하는 환자, 심장이식을 500일 넘게 기다리는 환자 등 각기 다른 입원 기간과 컨디션을 갖는다. 심장질환 특성상 응급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동시에 해결해야 할 업무가 많다. 3개의 비디오뇌파검사실이 있어 환자에게 경련이 일어나면 짧은 시간 안에 환자 처치와 관련 의료진 연락, 방사선동위원소 약물 주입과 이송을 모두 마쳐야 한다.
또 심전도와 호흡, 산소포화도 등 생체신호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는 텔레메트리 장비 16대는 쉴 새 없이 알람을 울린다. 응급 대응에 최적화하고자 늘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환자나 간호사 모두 대기 상황의 압박에 짓눌리지 않도록 분위기를 유연하게 살피는 열정이 필요한 곳이다. 침상에 내내 누워 지내던 중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받고 퇴원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며 얻는 기쁨도, 오랜 질병으로 마음까지 위축된 환자를 보듬어야 하는 아픔도 144병동의 하루 안에 모두 담긴다.
“‘환자들에게 이벤트 없는 안전한 하루’가 매일의 목표예요. 그러려면 제가 조금 더 바쁘고 예민해져야 해요. 서울아산병원이니까 치료가 가능하다는 자신감 속에는 책임감이 담기죠. 그래도 부담보단 보람이 더 커서 이곳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벽 6시. 리더 인수인계를 받고 중환자를 중점으로 병동 라운딩에 나선다. 환자 사정이나 면담 등으로 파악한 정보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오늘 하루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을 점검한다. 이때 13년간 쌓인 병동 경험은 요긴한 ‘촉’으로 작동한다. 환자뿐 아니라 신입 간호사를 백업하고 병실 관리, 환경 관리 등 담당 간호사들이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을 미리 챙기는 역할도 맡는다.
“평온하던 병동이 술렁이면 코드블루 상황이에요. 신속하게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 심장 모니터링과 기록, 스테이션 커버 역할 등을 나눠 상황을 정리하죠. 옆 병동과 MET에서도 출동하고요.
144병동에선 꽤 익숙한 일과이지만 이 상황을 처음 본 사람마다 우리의 침착한 대응에 놀라곤 해요. CPCR 경험이 쌓이면 환자에게 반응하는 속도가 확실히 달라져요. 성공적인 간호 경험은 모두에게 성장 동력이 되죠.”
병동에 알람이 자주 울리면 민감도가 떨어지기 쉽다. 황 대리는 그때마다 환자에게 직접 가서 경과를 확인한다. 대처가 빠를수록 환자들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줄어들고, 발로 뛰는 간호 분위기도 무르익는다. 신입 간호사 때 심장이식을 기다리던 환자가 속이 울렁거려 힘들다고 말한 직후 의식을 잃고 허망하게 사망한 적이 있다. 작은 신호도 놓쳐선 안 된다는 경각심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사실 중증 환자보다 비협조적인 환자가 더 어려워요. 간혹 병실 환자들과 마찰이 있거나 간호사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일단 환자가 불편해하는 것을 들어봐요. 소음이나 냄새 등 일차적으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걸 찾아보죠.
중요한 건, 환자를 성격이나 인상으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인 것 같아요. 환자에게 낙인을 찍고 나면 의식이 처지거나 상태가 나빠지는 순간을 예민하게 발견하기 어렵거든요. 우리가 집중할 건 환자의 증상이라는 걸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고위험 노인 환자들의 섬망 예방을 위해 심장내과 및 ACE팀과 PI활동을 진행 중이다. 환자가 신체를 계속 사용하도록 하고 낮과 밤이 바뀌지 않게 관리하면서 섬망 고위험 약제들도 적극적으로 상의하며 투여하고 있다. 중재 활동의 하나로, 재활치료사가 병실을 방문해 침상에 앉는 재활부터 시작해 환자가 병실을 걸어 나와 운동하는 모습을 황 대리가 사진 찍어 병동 간호사들과 공유했다. 섬망과 낙상 모두 예방할 운동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배우고, 간호를 통해 점차 회복한 환자들이 퇴원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더하는 계기가 됐다.
“심리적으로 지친 환자들, 긴장감 넘치는 병동 간호에 소진된 간호사들이 일말의 여유라도 가질 수 있도록 병동 분위기를 띄워보곤 합니다. 팀원들이 활기차게 간호하고, 이에 부응하듯 환자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앞으로도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전문가로서 신뢰받으며 긍정 에너지를 전파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