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는 환자에게 병동은 긴장되고 무서운 곳이다. 수술이나 치료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듣고 오더라도 막상 입원하게 되면 착잡한 마음이 든다. 계획표로 치료 과정을 인지하는 것과 그 과정을 실제로 겪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운 장소. 나 역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환자가 생각하는 병동은 그런 공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식도암 수술 후 여러 합병증으로 몇 해 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던 환자가 있었다. 내 기억 속 환자는 과묵하고 무심한 분위기를 풍겼다. 수술 후 처음 식이를 진행하는 기쁜 날에도, 다시 상태가 나빠져 금식하게 됐을 때도, 크게 좋아하거나 상심하는 모습 없이 늘 비슷한 느낌이었다. 환자는 긴 치료 과정에서 한 번쯤 나올 만한 불평조차 없이 그저 묵묵히 견뎠다. 호전 없는 컨디션과 조용한 병실,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왔지만 유독 그 방안에서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어려웠다.
환자가 힘든 시간을 조용히 견디는 것처럼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비일상적인 하루하루가 당연한 것이 되지 않고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계속해서 작은 대화를 시도했다.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는 환자에게 TV에 야구가 나오면 야구 이야기, 골프가 나오면 골프 이야기를 꺼냈다. 경기 규칙은 잘 몰라도 어떤 팀을 응원하는지, 응원하는 선수가 잘하고 있는지 같은 시덥잖은 질문을 던졌다. 환자는 병실 블라인드를 내려 두곤 했는데, 날씨가 좋을 때면 블라인드를 올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환자는 말을 많이 하거나 표정의 변화가 크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을 걸면 짧게나마 대답하고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반복적인 폐렴의 악화로 중환자실을 더 자주 오가게 됐다. 어느 날 장기간 중환자실 재실 후 병동으로 올라온 환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병동에 오고 싶었어.” “병동이 그리웠어.” 무덤덤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마스크 속에서 이를 악물고 겨우 눈물을 참았다. “중환자실에서 많이 힘드셨죠. 다시 회복해서 보호자분과 나란히 복도를 산책하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어렵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두려움의 공간일 수 있는 병동이 돌아오고 싶은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표현이 서툰 환자에게 용기를 주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환자는 다시 갑작스럽게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짐을 챙기러 온 보호자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자 “다시 좋아져서 올라오실 거예요. 믿어요”라며 미소를 보이고 병동을 떠났다. 그 인사가 우리의 마지막이 됐다.
그 후로 나는 처음 입원하는 환자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맞이하려 노력한다.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올라오는 환자에게는 “고생하셨어요.” 한마디를 건네며 마음의 긴장을 덜어드리려 한다. 병원의 특성상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나 분위기는 쉽게 바꾸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건네는 작은 말과 행동으로 병원과 병동이 너무 무겁지 않은 장소로 남길 바란다. 중환자실로 내려가는 분에게는 하루빨리 돌아오고 싶은 곳이 되길, 그리고 우리 모두가 환자에게 그런 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