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을 방문한 아이는 “입원하러 온 거 아니야”라는 엄마의 말을 믿지 못하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문 앞에 서있습니다. 저는 먼저 의자를 내어주며 “여기 앉아보자”라며 말을 건네고,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면 의자를 문 밖으로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입실보다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들을 보여주며 ‘들어가도 괜찮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돕습니다.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 전담간호사인 저는 체온을 측정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수다쟁이’가 됩니다. “여보세요 놀이 해볼까?” “집에서도 해본 적 있지?” 쉼 없이 떠들며 아이의 관심을 분산시키려 노력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불안한 눈초리로 저를 쳐다봅니다. 체온 측정이 끝나면 빠르게 “안녕”을 외치며 손을 흔들며 거리를 둡니다. 그러면 몇몇 아이들은 그제서야 안심을 한듯 치료실 안의 자석판 숫자와 알파벳, 한글 자석들을 이러 저리 붙이며 잠시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제가 사비로 마련한 자석판에 관심을 가져줄 때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본격적으로 진정치료를 하기 전, 진정 전 평가와 진정동의서 구득을 위해 태블릿을 들고 다가가면 저는 다시 수다쟁이 간호사가 됩니다. “집에서 태블릿으로 어떤 영상 보니?” “엄마랑 선생님은 이거보고 있을게” “우리 어린이도 볼래?” 등 여러 말들을 하다 보면 읽지 못하는 글씨를 같이 봐주는 아이도 있고, 태블릿의 펜을 잡고 싶어 다가오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쉼없이 말을 걸고 눈을 맞추며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문진하는 사이 저는 아이를 유심히 빠르게 살핍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에 보이는 이상은 없는지, 콧물이나 기침 유무, 피부상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짧지만 중요한 순간입니다.
진정제 투약 전 모니터링을 적용할 때도 다시 수다가 시작됩니다. 환자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기 위한 모니터링 라인을 연결하기 위해 산소포화도 센서 라인은 뱀이, 스프링이, 밴드가 되기도 하고 모니터는 로봇이 됩니다. “우와, 정말 잘한다”라고 끊임없이 외치며 산소포화도 센서를 붙이면 아이는 잠시 참아 주기도 합니다. 이어 심전도 스티커는 또 하나의 놀이가 됩니다. “오른쪽, 왼쪽, 하나, 둘, 셋~!” 간지럼을 태우듯 붙이며 아이의 반응을 관찰합니다. “우와 역시 해낼 줄 알았어, 최고! 최고!” 엄지척을 해주면 아이도 본인이 스스로 잘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듯합니다.
밴드와 스티커 놀이의 마무리 멘트는 “이 스티커들이 우리 어린이를 지켜줄 거야”입니다. 부모님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기에 아이들이 불편해하더라도 아이를 다독이며 안전한 진정치료의 파트너가 되어 줍니다. 아이가 모니터링 스티커에 보다 빨리 적응하기를, 그리고 조금 더 편안하게 진정치료 과정을 받아들이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오늘도 수다쟁이가 됩니다.
정맥주입로를 삽입할 때도 수다쟁이 간호사가 출동합니다. 얼마 전 첫 진정치료 후 수술을 앞둔 환아가 있었습니다. 보호자인 어머님도 많이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정맥주입로를 삽입하면서 “큰 모기가 엥~ 하고 물었네” “모기 물렸을 때 ‘아프지 마세요’ 밴드 붙이잖아. 선생님은 곰돌이밴드도 붙여주고 이불도 덮어줬네~”라고 주의를 돌리는 말들을 이어가는 동안 지켜보던 보호자도 긴장이 풀렸는지 “집에서 모기에 물렸을 때도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어쩌죠?”라고 말했고, 저는 “설마요, 세상에 이렇게 아픈 모기가 있을까요?”라고 대답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정맥주입로를 삽입할 때마다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이런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들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정제 투약과 정맥주입로 삽입까지 수다쟁이 간호사였다면 이제는 진정유도를 위해 투명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커튼을 치고 조명을 낮춥니다. 모니터를 통해 반응을 주의 깊게 확인하며 조용히 관찰을 이어갑니다. 제 수다가 끝나면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에는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에서 저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낯선 공간이 너무 낯설지 않도록 아이들의 낮은 눈높이에서도 보이게 알록달록 ‘어린이병원 진정치료실’이라고 붙여놓았습니다. 아직 많이 배우고 채워가야 할 진정치료실이지만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제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 보호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제 파트너가 되어주는 보호자들과 저를 믿어주는 아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어린이병원간호팀
박정희 차장
박정희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간호팀에서 소아환자안전 전담간호사로 근무하며 소아환자의 진정치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린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돌봄을 제공합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소아환자안전 전담간호사의 역할을 소개하고, 보다 많은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