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섬망 예방, 응급실 간호사의 시선에서 2025.11.05

(AI 활용 일러스트 ⓒ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응급실에는 처음부터 ‘섬망(급성 혼란)’으로 내원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응급실의 시끄러운 모니터 알람 소리와 24시간 켜져 있는 조명, 보호자와 의료진의 긴박한 목소리, 환자들의 신음과 혼수 환자들의 고함 소리 등에 그대로 노출되며 섬망이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타병원 전원도, 우리 병원에 입원도 어려워 입원 대기가 길어지는 환자에게서 더 흔하게 관찰된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의 불편한 부분을 또렷이 말했던 환자가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도 갑자기 대답은 하지 않고, 허공을 향해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있다. “환자분, 지금 병원이에요. 괜찮아요”라고 이야기하면 이내 안정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소리 지르며 침상에서 내려오려 한다면, 환자 안전을 고려해 담당의에게 알린 뒤 진정제를 투여하거나 필요 시 신체 보호대를 적용한다. 이는 즉각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단순 억제나 약물만으로는 섬망 환자의 근본적 어려움인 두려움, 불안, 감각 혼란 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들었던 ‘노년 환자 간호’ 강의에서는 섬망 예방을 위해 ‘기능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전, 거동 문제로 가장 많은 불편감을 겪는 대소변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계속 소리만 지르면서 발버둥 치던 환자가 소변줄 삽입 후 많은 양의 소변을 많이 보고 편히 잠드는 경우가 있다. 의식 유무와 무관하게 기저귀에 대소변을 본 환자들은 큰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런 환자들에게 미리 확인 후 기저귀를 교체해 드리면, 힘든 병원 생활 속에서도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기는 응급실 환경에서 쉽지는 않지만, 환자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가?”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간호학적 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환자의 기본적 신체 활동과 인지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 ‘적절한 치료와 인간적 돌봄’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응급실 섬망 관리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응급실은 밤에도 환자가 내원한다. 환자 유입이 비교적 적은 단 몇 시간만이라도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환자들이 수면을 취할 수 있게 최대한 조명을 낮추고 의료기기 알람을 최소로 설정한다. 알츠하이머,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의식 상태가 명확하지 않은 환자에게는 보호자와 함께 환자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장소 등을 확인하는 짧은 대화를 통해 지남력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반복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환자에게는 시선을 맞추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지금 여기 병원이에요, 괜찮아요,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어본다.

 

현재 환자가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히 환자를 가장 잘 아는 보호자에게 평소 말투, 성격, 거동 상태, 섬망 경험 여부 등을 간단히 확인하고 이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통증, 탈수, 배뇨 욕구, 낯선 환경에서 오는 혼란, 소음과 조명 자극으로 인한 수면 박탈 등 다양한 불편에서 섬망의 초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섬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불편이 쌓여 드러나는 신호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섬망 예방은 특별한 기술이라기 보다 작은 불편을 발견하고 해소하려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수면을 위해 조명을 낮춰드리고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것, 불편한 체위를 바로잡아 드리는 것,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작은 돌봄이 모여 환자의 불안과 혼란을 줄이고, 결국 섬망 발생을 예방하는 길이 된다. 응급실에서의 짧은 만남 속에서도, 작은 불편을 줄이려는 관심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섬망 예방의 출발점이 아닐까?

응급간호팀
고준호 주임

응급간호팀 고준호 간호사는 환자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함께하며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인 응급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매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환자의 회복을 돕고 동료들과 협력하며 배워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들, 간호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고민, 그리고 응급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들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입니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