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병원을 잇는 일, 마음을 잇는 일 2025.12.12

진료협력센터 간호사의 역할

진료협력팀 김규민 주임

 

 (AI 활용 일러스트)

 

나는 진료협력센터 간호사로서 환자의 전원 혹은 통원 연계를 통해 ‘치료의 다음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환자가 우리 병원을 떠나는 순간까지 최선의 선택을 함께 고민하는 일, 그것이 나의 역할이다. 최근 한 말기 췌장암 환자를 상담하면서 이 일의 무게를 깊이 느낀 적이 있다.


복막전이로 장폐색이 생겨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는 비위관이 삽입된 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입으로 밥을 먹고 싶다’는 환자의 소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처럼 들렸다. 병원에서는 장루 수술을 검토했지만 여명이 길지 않았고 수술 일정 또한 불확실했다. 주치의가 보존적 치료와 호스피스 전원을 권유했지만 환자는 마지막까지 수술의 가능성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인 아들과 함께 환자의 바람과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깊이 있는 상담을 이어갔다. 수술이 가능한 인근 병원을 찾아 전화를 걸고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며 전원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한 병원에서는 병상 부족을, 또 다른 병원에서는 위험 부담을 이유로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병원 인근의 여러 병원에 연락해 환자의 사정을 설명했다.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고, 전화기 너머로 반복되는 거절에도 ‘혹시 다음 병원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계속 수화기를 들었다.


일곱 번의 시도 끝에 조건이 맞는 병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정말 감사하다’는 보호자의 말에 잠시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환자의 안도 섞인 한숨은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주말이 지나며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수술은 포기한 채 연고지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했다. 수많은 문의와 조율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큰 위로가 됐다.


진료협력센터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난다. 어떤 분은 전원을 통해 치료를 이어가고 또 어떤 분은 임종을 준비하기 위해 연고지로 돌아간다. 치료를 우선으로 한 연계가 당연하지만 때로는 치료만이 환자에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보낼 것인지는 환자와 가족에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료협력센터의 역할은 단순히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상담을 거듭할수록 나의 일은 환자의 남은 시간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함께 모색하는 섬세한 업무임을 실감한다. 때로는 치료와 포기의 경계에서, 의료적 판단과 인간적인 바람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보다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길을 함께 찾아주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에 더 깊이 귀 기울이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함께 만들어가는 진료협력 간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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