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중신경계감시 장비가 국내 최초로 우리 병원에 도입된 2006년. 신경과 소속으로 입사했다.
검사에 대한 한국어 자료가 전무한 터라 유일하게 의지할 건 담당 교수가 건넨 해외 논문뿐이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비슷하게 따라하며 의미 있는 결과를 확인했을 때 느낀 기쁨은 지금까지 근무를 지속할 수 있는 첫 매듭이 되었다.
“처음엔 오류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없었어요.
그저 환자의 신경이 손상되면 걷지도 못하고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컸죠.”
임상병리사로선 낯선 수술실에서 의료진과 라포를 쌓아가며 책임감과 집중력, 섬세함을 가지고 검사에 임했다.
“수술을 맡은 교수님이 안전한 수술과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 꼭 필요한 검사라면서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 실수를 하거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자 센서를 꼽는 부위까지 정석적인 지침을 고집하며
17년째 환자들의 신경계 안전을 지키고 있다.
뇌신경검사실에선 눈으로 볼 수 없는 뇌의 활성도와 뇌혈관의 이상유무, 신경의 기능이상 등을 장비를 이용해 도식화하고 상태를 평가한다. 근전도검사, 뇌파검사, 뇌혈류검사, 수면검사, 유발전위검사 5가지 검사 파트로 이뤄지는데, 그 중 유발전위검사 파트에선 6명의 임상병리사가 수술 중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를 실시간으로 살핀다. 수술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더라도 수술 중에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또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안전을 위해 개발된 수술중신경계감시 검사는 현재 신경외과, 정형외과 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수술 환자의 몸에 여러 개의 센서를 연결하고 수술 중에 신경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신경 기능이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즉각적으로 집도의에게 알려 수술 진행을 잠시 멈추고 환자 상태를 분석한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이자 환자에게는 신경이 회복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수술이 끝날 때 까지 의료진과 손발을 맞추며 수술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환자의 신경학적 손상을 예방해 나간다.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를 최소 5분 간격으로 살피며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 말 안에는 집도의의 계획대로 신경은 잘 보존하면서 수술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담기죠. 의사가 편안하게 수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기도 해요.”
오전 8시, 손대현 과장은 수술실에 입실해 마취가 확인되는 대로 환자의 손과 다리, 어깨 근육 등에 센서를 부착한다. 수술 중에는 위치를 수정하기 어려워 최대한 정확한 위치에 검사용 바늘을 꽂고 테이프로 고정한다. 전기 자극을 유도하고 관찰된 첫 신경 반응은 수술 과정에서 기준이 된다. 수술이 시작되면 연속적으로 버튼을 눌러 전기 신호를 자극하고 환자 상태를 살핀다. 보통 5분마다 확인하는데, 종양이 위험한 위치에 있으면 집도의가 1분, 3분 단위로 신경 반응 감시를 요청하기도 한다.
“종종 데이터와 교수님의 판단이 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상의 과정을 통해 교수님은 자신이 놓친 것에 대해 되짚어보고, 저는 장비 세팅을 바꾸면서 보정 과정을 거치죠.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면 교수님도 확신을 가지고 수술에 임할 수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 반응을 다루는 과정에서 의료진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죠.”
초창기에는 수술중신경계감시 검사에 대해 아는 의료진이 적 어 의뢰가 많지 않았다. 반면 검사에 관심있는 의료진은 더 많은 센서를 붙여 특이 반응을 살피고 전에 없던 세팅을 요청하기도 했다. 함께 연구하고 세팅하며 새로운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은 늘 흥미로웠다. 수술 직후에는 평가가 어렵지만 하루 이틀 지나 종양이 잘 제거되고 환자 상태도 좋다는 걸 의료진이 전해줄 때면 조금 더 힘을 내게 된다.
“입사 초기, 수원에서 통근하던 때였어요. 수술을 마치고 퇴근하면 매일 밤이 깊어 있었죠. 어느 날 퇴근 버스가 동네에 다다랐을 무렵,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응급 대뇌동맥류 수술을 하는데 수술중신경계감시 검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 잠실행 버스로 갈아탔어요. 수술실에서 밤을 꼴딱 새우고 나왔을 때 평소 무뚝뚝하던 담당 교수님의 ‘수고 많았어요’라는 인사가 기억에 남아요.”
인위적인 오류나 기계적인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환자의 몸에 검사용 전극을 설치하는 방법이나 설정하는 검사값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조금 위험한 수술인 경우에는 식사도 거른 채 장시간 긴장하며 집중한다.
“수술이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이 있다고 부정적인 말을 꺼내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이 말에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검사자인 내가 실수한 게 있을 거라고 위안삼는 게 마음은 편할 수 있겠지만 실제 환자의 신경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수 있거든요.
특히 신입 직원의 경우엔 수술실 분위기에 압도 될 수 있죠. 그렇다고 그 순간을 놓치면 환자에게 평생의 장애를 남길 수 있어요. 의료진과 함께 확인하고 보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날려버리는 걸 가장 경계해야 하죠. 환자의 신경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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