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일러스트)
신입 간호사 시절, 50대 여성 환자의 임종 순간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폐암으로 긴 투병을 이어가던 환자는 치료실 한편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곁을 지키며 흐느끼던 세 딸과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내 또래의 딸들을 둔 모습이 나의 엄마와 겹쳐 보였고, 울고 있던 딸이 마치 나 자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눈물을 삼킨 끝에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었기에 애써 간호를 이어가야 했다.
종양내과 병동에서는 하루 평균 1명의 말기 암환자가 사망한다. 수많은 암환자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임종 간호는 때때로 나의 간호에 무력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또한 슬픔과 부담감으로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이 질문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간호사가 지닌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환자의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나는 환자의 마지막을 가장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전문가로서, 무엇보다 ‘간호사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생애 말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의 경험이 힘듦과 슬픔을 넘어 사랑과 연민으 로 남을 수 있도록 간호사의 정서적 지지와 회복을 돕는 ‘온:담회’를 시작했다.
온담회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는 모임’의 뜻을 담고 있다. 암병원간호1팀과 2팀 간호사들이 격월로 자유롭게 모여 생애 말기 환자를 돌보며 느끼는 감정, 어려움,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지지해주는 시간을 갖는다. 나 혼자 품고 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 시간을 통해 회복의 힘을 얻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이다.
온담회는 2025년 5월 27일 임종 간호 교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네 차례 진행됐다. 그동안 다룬 주제는 임종 간호 경험과 생각 나누기, 해외 병원의 임종 간호 사례, 임종실의 핵심 가치 공유, 임종기 환자의 욕창 간호 경험 등 다양했다. 총 163명의 간호사가 참여했으며 모임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8점이었다. “임종 시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됐습니다.” “환자들의 존엄한 죽음, 동행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석자들은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임종 간호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며 임종 간호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 누군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는 간호사로서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환자의 지나온 삶에 귀 기울인다.
통증 없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돕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간호한다. 무엇보다 환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온담회는 아직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오늘도 우리는 바쁜 현장 속에서 누군가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하는 행복한 간호사로 한 걸음씩 성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