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활용 일러스트)
응급실은 늘 생명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생명을 살려야 하는 상황과 삶의 마지막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한순간에 겹칠 때, 의료진의 발걸음은 자동으로 위급한 환자를 향한다. 하지만 몸과 달리 마음은 늘 뒤를 돌아보게 된다.
오른쪽 유방암이 여러 장기로 전이된 환자가 요양병원에서 말기 치료를 받던 중, 아침에 갑작스러운 의식 저하로 응급실 소생 구역에 실려 왔다. 통증 자극에만 반응하고 저혈압 상태였기에 채혈, 수액, 승압제 투여, 심전도와 흉부 X-ray 등 처치와 검사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상반신 곳곳에 붙어 있는 마약성 진통제 패치가 확인되었고, 담당의는 이를 의식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판단했다. “제발 의식만 돌아오게 해주세요···.” 평소처럼 눈을 맞추던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딸의 간절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말기 단계에서 의식을 깨우는 처치는 연명의료에 가까웠고, 의료진은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설명해야 했다. 딸은 결정을 망설였고, 결국 의사는 진통제 해독제를 투여했다. 잠시 후 의식이 조금 돌아온 환자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그 모습을 본 딸은 “엄마, 미안해… 그만 힘들어도 돼” 울먹이면서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하였다.
바로 그때, 고열과 경련 증상을 보이는 또 다른 환자가 급히 들어왔다. 나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는 울먹이며 “진통제라도 먼저 해달라, 임종 면회를 안내해달라” 부탁하는 딸이 있었고, 환자는 극심한 통증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게다가 치료를 위한 관장약이 투여된 상태라 기저귀와 시트가 변과 약물로 젖어 있어 임종 면회를 위한 최소한의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응급의학적으로는 ‘비응급’이었지만, 통증 조절과 마지막 인사를 위한 돌봄이 절실했다. 반면 눈앞의 경련 환자는 단 1분도 지체할 수 없는 ‘응급’ 환자였다. 그래서 응급 환자를 향해 뛰어가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막다른 길 앞에 멈춰 선 것 같이 답답함을 느꼈다.
다행히 동료들이 경련 처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뒤돌아서 내 환자에게 진통제를 투여하고 급히 기저귀를 갈고 시트를 정리했다. 곧바로 임종 면회를 위해 대기 중인 환자의 아들과 며느리를 안내했고, 그들은 곧 환자의 곁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소생 구역 한쪽에서는 가족의 마지막 인사가 흐르고, 다른 쪽에서는 경련 환자의 추가 처치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응급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주 나란히 놓인다. 그리고 이런 위기와 위로의 순간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도와주는 동료가 없었거나 심정지 환자였다면, 임종 면회와 통증 조절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그 뒤에는 여러 보호자의 눈물과 고통을 잠시 눈감아야 할 때가 많다.
4년 전, 심장내과 중환자실에서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던 순간은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깔끔히 정돈된 침구와 단정히 다듬어진 편안해 보이는 얼굴, 고르게 정리된 수염까지. 그 장면이 문득 떠오를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위로가 올라온다. 그 기억은 현재까지 여러 번 내 일상을 다시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위기의 순간, 응급 처치를 위해 한쪽을 향해 뛰어가지만 비응급이라 해도 내 간호가 절실히 필요한 또 다른 한쪽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때로는 이런 흔들림과 망설임이 혹시라도 응급 처치를 지연시키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이해해 주고, 오히려 내게 고마움을 건네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날 때가 많다. 임종 면회를 마친 딸 역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이런 순간들은 다시 한번 내 일이 사람을 대하는 일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나는 소생과 임종 사이를 오가는 응급실에서도 여전히 조금은 흔들릴 줄 아는 간호사로 남고자 한다.
그 흔들림은 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응급 처치를 마친 뒤에도 내가 돌아봐야 할 또 다른 간호가 있음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응급간호팀
고준호 주임
응급간호팀 고준호 간호사는 환자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함께하며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인 응급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매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환자의 회복을 돕고 동료들과 협력하며 배워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들, 간호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고민, 그리고 응급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들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