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임종간호, ‘멈춤’을 통해 얻은 용기 2026.02.11

그날 우리가 잠시 멈춘 이유

- 암병원간호1팀 유금신 과장-

 

(AI 활용 일러스트)

 

지난해 7월, 미국 시카고대학교 의료원으로 떠난 해외 연수 중에 ‘The Pause’라는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환자 임종 후 의료진이 잠시 손을 멈추고 묵념하는 시간이다. 아주 짧은 멈춤이지만 그 순간은 환자를 단순한 케이스가 아닌 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했다. 떠난 이를 존중하는 동시에 의료진에게도 감정을 정리할 여백을 만들어 주었다. 임종이 간호의 끝이 아니라 과정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귀국 후 나는 이 경험을 ‘온담회’ 시간에 공유했다. 온담회는 암병원간호1팀과 2팀 간호사들이 임종 간호 과정에서의 감정과 고민,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임이다. 내가 준비한 발표 역시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임종 간호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동료들 앞에서 솔직하게 꺼내놓는 데 의미를 두었다.

 

며칠 후 내가 근무하지 않던 날, 병동에서 한 환자가 사망했다. 2022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두 번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70대 남자 환자였다. 입원할 때마다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거나 말없이 침상 밖으로 내려오려 하는 섬망 증상이 있어 병동에서는 늘 긴장을 안고 지켜봤다. 그날 환자는 폐렴 치료를 위해 입원했지만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고 결국 생을 마감했다. 사망 선고 뒤 부리나케 사후 간호를 준비하려던 순간, 동료 간호사가 “잠깐 묵념하고 갈까요”라며 말을 꺼냈다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순간, 환자분을 떠나보내며 우리 모두 묵념을 통해 고인의 삶과 기억을 기리고자 합니다.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분주하던 병실의 공기가 그 순간만큼은 정지한 듯 고요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좀처럼 흔들림 없던 보호자는 묵념이 끝난 뒤 처음으로 눈물 섞인 깊은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 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그동안 온담회에서 나누었던 고민들이 그저 한순간의 말로 휘발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발표 이후 병동에는 임종을 슬픔과 부담감으로 어렵기만 한 순간이 아니라 간호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이어졌다. 임종기 환자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사후 간호 과정에서 무엇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오갔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임종 간호의 본질과 간호사의 정서적 소진을 치열하게 고민해 온 시간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날 이후 병동에서는 임종의 순간에 짧게나마 ‘The Pause’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잠시 멈춘 이유는 분명했다. 떠나는 환자를 온전히 예우하기 위한 시간이자 남겨진 가족의 곁을 지키기 위한 시간이었으며, 간호사로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위한 시간이었다. 환자에게 집중하는 간호는 우리를 소진시키는 일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잠시 멈추어 애도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간호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멈춤’을 통해 비로소 다음 환자에게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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