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마비 환자가 서서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걷기 시작했다.
척추 질환을 치료하는 박세한 조교수는 드라마 같은 순간을 종종 만난다.
“모든 환자와 겪는 치료 과정이 제가 성장해나가는 단계”라는 그는
항상 조금 더 고민하고 도전하며 회복의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박세한 교수
환자 경험에서 쌓이는 자산
박세한 교수는 아버지를 통해 의사라는 직업을 지켜봐 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자기 희생적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환자들과 오래 인연을 이어가는 데서 의미있는 직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역시 의사가 되어 새로운 케이스에 계속 도전하는 대학병원에 남았고 현재 정형외과에서 척추 질환 전반을 치료하고 있다. 환자들과의 인연도 하나둘 늘었다. 뼈가 자라지 않는 연골무형성증 13살 환자도 그중 하나였다. 유전자 변이로 흉추와 요추 공간이 매우 좁아 신경을 압박하며 다리 통증이 심해지고 걷는 데 제한이 있었다. 합병증과 마비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환자와 부모 모두 지체장애를 안고 있어 의사결정이 어렵고 상태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박 조교수는 환자의 친척을 통해 환자 정보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설득을 통해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 6개월, 환자는 손편지를 전했다. 교수님 덕분에 이제 잘 걷고 탁구도 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환자들과 함께 겪는 과정이 많아질수록 저도 성장하는 것 같아요. 많이 좋아진 환자분들의 감사 표현은 마음의 자산이 되어 조금 더 힘들고 어려운 것에 도전하게 만들거든요.”
그가 만나는 암 환자의 경우, 치료 목적이 완치가 아닌 여명을 조금 더 편안히 하기 위한 방편에 가깝다. 네 번의 암을 겪고 척추까지 전이된 25세 환자를 만났다. 두 번의 수술에도 암은 빠르게 재발했고 호흡 마비까지 진행됐다. 의식이 남아있던 마지막 순간, 환자는 그동안 최선의 치료를 해줬으니 교수님이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가 환자 앞에서 운 것은 처음이었어요. 끝이 정해진 상태로 만났다 해도 좋은 기억이 될 순 없죠.
하지만 마지막 길에 함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환자를 보내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 경험도 잊지 못할 자산이 될 거예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박세한 교수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위한 정성
척추 손상으로 발생한 신경 기능의 문제는 원인을 제거해도 회복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그 정도를 예측할 수 없어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서로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대치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수술 후 환자 만족도가 크게 달라져요. 저 또한 환자의 필요를 파악하다 보면 수술을 권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는 수술 속도가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겨지기 쉽지만 정성을 얼마나 들이는지에 따른 효과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 번 더 돌아 보고 놓친 게 있는지, 신경 공간을 좀 더 넓게 틔워줄 수 있는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성을 쌓을수록 더 나은 결과로 나타나죠.”
최근 팀 차원의 노력에서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조기 회복, 수술 감염 방지, 욕창 방지 프로토콜 등을 구축하자 안정성과 치료 수준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내심 부수적인 요소라고 여기며 효과를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적용 이후 1년간 척추 감염이 나오지 않았어요. 한 사람의 경험이나 실력에 기대던 것에서 이제는 팀 전체의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부수적일 수 있는 작은 걸음이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 치료 수준을 높여갑니다.”
표준을 밝혀나가는 연구
척추 파트는 같은 줄기 안에서도 관여하는 인자가 많아 환자마다 치료법에 대한 고민이 길어진다.
“치료 원칙이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될 순 없지만 최대한 그 가지들을 밝혀 환자마다 달리 적용해야 할 주의점과 수술 방법 등을 기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왔어요.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인자들은 데이터를 모으고 측정하며 하나씩 검증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시리즈의 일환으로 ‘경추 신경근병증에서 추간공 높이가 수술의 임상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최근 북미경추연구학회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 환자의 수술 경과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추간공 높이에 따른 인자를 밝힌 것이다.
“제 환자 치료뿐 아니라 다른 의료진이 더 좋은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표준을 정립하고 연구나 임상 분야에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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