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분들이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기억하실 겁니다. 수천 년간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에서 AI가 보여준 정교한 수읽기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의료 AI 분야에서는 이미 알파고 이전부터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012년, 대규모 이미지셋 분류 알고리즘의 성능을 평가하는 국제대회 ILSVRC에서 토론토 대학교 제프리 힌튼202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일리야 수츠케버 OpenAI 공동창립자,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연구팀이 개발한 알렉스넷(AlexNet)이 압도적인 성능으로 우승하며 AI의 주류가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규칙을 일일이 설계하던 시대가 끝나고 AI가 스스로 규칙을 찾는 딥러닝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픽 작업 전용이던 GPU는 딥러닝 학습을 위한 병렬 연산 장치로 확장되었고, 의료영상 분석 분야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백만 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해 고수가 된 알파고처럼, 수백만 장의 X-ray, CT, MRI 영상을 학습한 AI는 미세한 암세포를 찾아내는 판독의 고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AI 대표 기업인 루닛과 뷰노 등의 소프트웨어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CE 인증을 획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영상의학을 넘어 병리학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유리 슬라이드를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는 디지털 병리 시스템이 도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 페이지(Paige)가 개발한 전립선암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가 2021년 병리학 AI 기술로는 사상 최초로 미국 FDA의 ‘드 노보(De Novo)선행기술이 없는 신기술 의료기기’ 허가를 획득했습니다. AI가 암의 1차 진단 과정에서 공식적인 파트너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멀티모달 AI의 임상현장 적용 예시
2017년 구글은 비틀스의 명곡 ‘All You Need Is Love’을 패러디한 제목의 논문 ‘Attention Is All You Need’를 통해 새로운 딥러닝 구조인 트랜스포머를 제안했습니다. 문장 속 단어들의 관계와 맥락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이 구조는 BERT, 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의 초석이 되었고, 단순 텍스트를 넘어 바이오 데이터를 분석하는 핵심 도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의 클라라(Clara), 바이오네모(BioNeMo) 플랫폼은 의료·제약 등 생명과학 기업들이 자체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인실리코 메디신(Insilico Medicine)은 AI가 발굴한 질병 타깃을 기반으로 AI가 설계·합성한 후보물질을 임상 2상까지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3~4년이 걸리던 과정을 단 18개월로 단축하며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제 AI는 이미지나 텍스트 하나만 보는 수준을 넘어, 인간처럼 오감을 통합 활용하는 ‘다중모달 AI’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AI가 폐 X-ray 한 장을 보고 “폐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면, 미래의 AI는 “환자의 유전적 특징유전체 데이터, 최근 기침 기록텍스트, X-ray 사진 등을 종합해 볼 때 A 약물이 가장 적합하다”는 개인 맞춤형 처방을 내립니다. 영상, 텍스트, 유전체 등 이종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이해해 의료진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인간 중심Human-in-the-loop 모델이 완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AI는 이제 의료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협력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