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체-약물 접합체(ADC): 정밀 타격 뒤에 숨은 난제들 에서 이어짐
항체-약물 접합체(ADC)의 제조 초기에는 항체 표면에 약물을 무작위로 붙이는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일정하지 않은 약물 탑재량과 링커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임상시험에서 많은 실패 사례들이 생겼죠. 근본적인 해결책의 두 가지 핵심은 DARDrug-Antibody Ratio, 하나의 항체에 결합된 약물의 개수을 균일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링커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암세포 내에서만 선택적으로 절단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적 돌파구: 링커의 정밀 제어
돌파구는 부위-특이적 접합(Site-Specific Conjugation) 방식에서 나왔습니다. 이전의 무작위 결합과 달리 항체 단백질 사슬의 ‘C-말단’에 약물이 위치할 주소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C-A-A-X C: 시스테인(cysteine), A: 지방족 아미노산(aliphatic amino acid), X: 다양한 아미노산 이라는 특정 아미노산 배열을 추가해 약물이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결합하도록 유도하는 원리입니다. 이 기술을 통해 모든 항체에 동일한 개수의 약물을 탑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ADC가 동일한 구조와 분자량을 갖게 되면서 정확한 투약 효과 예측과 품질 관리가 가능해졌습니다.

링커 기술도 혁신적으로 진화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베타-글루쿠로니드(β-Glucuronide)입니다. 이 링커는 정상세포의 중성 환경(pH 7.4)에서는 벤조산아미드(benzoic amide) 결합 방식으로 7일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암세포에 과발현되는 베타-글루쿠로니다제(β-Glucuronidase)라는 효소와 산성 환경을 만나면 절단됩니다. 마치 정확한 암호를 입력해야만 열리는 자물쇠와 같죠. 혈액을 순환하는 동안에는 꿈쩍도 않다가 암세포 내부 리소좀(pH 4~5) 환경에서만 작동하는 것입니다. 정상세포에서는 약물 방출이 최소화되고 종양 내에서만 선택적으로 약물이 방출돼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off-target’ 독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도약
흥미롭게도 이러한 기술 혁신의 중심에는 우리나라 바이오텍 기업들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성과는 ADC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World ADC Awards’에서의 수상입니다. ADC 구성요소의 혁신성과 임상적 검증 수준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이 시상에서 국내 기업이 최우수 ADC 플랫폼 기술상Best ADC Platform Technology을 2021년, 2023년, 2024년 세 차례나 수상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준우승을 차지했죠. 글로벌 제약업계가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력은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체 개발한 ADC 플랫폼을 존슨앤드존슨(J&J)에 2조 2,400억 원 규모로 기술이전했고 일본 오노제약과도 대규모 협력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23년 12월 얀센과 기술이전 계약 후 계약금 1,300억 원을 수령하며 지난해 1분기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여러 ADC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1상이 미국과 호주에서 진행 중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임상 데이터의 우수성입니다. DAR=2로 균일하게 제조된 ADC는 기존 경쟁 ADC 대비 치료지수Therapeutic Index, 안전용량과 효과용량의 비율가 4~8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부작용은 훨씬 적다는 뜻입니다. 엔허투(Enhertu)에서 보고된 간질성 폐질환이나 안독성 같은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HER2 중·저발현 암에서도 46%의 객관적 반응률(ORR)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HER2 고발현 암에서만 효과가 있던 것에 비하면 적용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것입니다.

진화하는 ADC의 미래
ADC 기술은 지금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ADC는 다양한 페이로드를 활용하는 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메커니즘의 약물을 동시에 탑재해 암세포가 한 약물에 내성을 보이더라도 또다른 약물로 공격하게 하는 ‘듀얼 페이로드’ 방식은 효과와 유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입니다. 면역자극제를 페이로드로 사용해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대신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 공격을 유도하는 ADC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표적 면역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스테로이드로 불리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또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 조절제)를 페이로드로 사용하는 ADC도 면역매개 염증질환 영역에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표적 세포에 항염증 작용을 집중시켜 전신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강화하려는 전략입니다. 방사성 원소를 활용한 정밀 방사선 치료, RNA나 PROTACProteolysis-Targeting Chimera, 단백질 분해 유도 물질과 같은 새로운 기전의 물질들도 페이로드 후보로 검토되고 있으며, 독성이 매우 강한 신규 화합물들도 연구 대상입니다.
궁극적 목표는 명확합니다.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링커의 안정화와 새로운 페이로드 발굴이 계속돼야 합니다. 정밀한 DAR 제어 및 종양 선택적 링커 기술은 더욱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과학과 시장이 만나는 지점
ADC의 발전 과정은 ‘우수한 아이디어만으로는 중개의학 연구개발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임상 수요에 대한 정확한 이해, 차별화된 핵심 기술 확보, 한정된 자원의 전략적인 배분이 모두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R&D 투자와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전문인력 양성,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성과 확산까지 여러 요소가 균형 있게 진행돼야 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은 이러한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갖춰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해결할 난제가 많습니다. 각 암종마다 최적의 항체-약물-링커 조합을 찾아야 하고, 약물 내성을 극복하는 한편 제조 비용을 낮춰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20여 년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지식과 기술은 ADC가 향후 암 치료의 핵심 무기가 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유도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암세포만 타격하는 항암제, 먼 미래 같던 이야기가 이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