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활용 일러스트)
응급실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마주하는 시간은 대부분 짧다. 응급 상황이 예상될 때, 우리는 환자나 보호자의 표정보다 먼저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상태를 살핀다. 동료 간호사는 정맥관 삽입을 위해 팔과 다리의 혈관부터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비교적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일 때 조차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처치와 검사가 동시에 시작된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감정과 사정을 지니고 있는지 미처 알기도 전에, 각자의 증상에 대한 감별과 처치에 집중한다.
“어떤 증상이 있었나요?”
“지금은 조금 나아진 건가요?”
“언제부터 시작됐어요?”
질문은 짧고, 빠르게 이어진다. 당황한 보호자들은 대부분 고령이고, 통증 속에 있는 환자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많다. 하지만 의료진의 마음은 오히려 다급해진다.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응급실에서의 만남은 짧고, 급하게 이루어지지만, 결코 가벼운 만남은 아니다. 오히려 가볍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보다 환자의 상태, 증상, 기저질환 같은 정보에 집중한다. 응급실에서는 ‘급하다’라는 이유로 어떤 절차도 건너뛸 수 없기 때문이다. 혈관을 보호해야 하는 팔은 없는지, 처치 전 조영제, 수혈, 약물, 드레싱 물품에 대한 알레르기는 없는지 하나씩 꼼꼼히 확인한다. 이 과정은 늘 반복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된 이후에도 검사 결과에 관한 확인과 처치, 추후 증상에 관한 확인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눈 떠보세요. 주무시지 마세요.”
“다리 한 번 들어보세요! 처음보다 감각은 어떠세요?”
“통증 호전이 조금 있으세요?”
“변 색깔이 어땠어요?”
“혈압 체크 한 번 할게요.”
증상이 확실히 악화했는지, 호전됐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질문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증상이 호전되었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만일 악화했다면 의사에게 알리며 다음 처치를 준비한다. 내가 환자의 상태와 처치, 처방, 검사 결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응급실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감정까지 보살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고, 처치가 끝나면 시술을 받으러 이동하거나 입원 또는 전원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막상 그렇게 고맙다고 하시면서 응급실을 떠나시는 뒷모습을 볼 때면,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응급실에서 우리는 서로를 깊이 알지 못한 채 헤어진다. 한숨 고르려고 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응급실을 떠난다. 상대방이 현재 처한 감정이나 상황보다는, 수치와 증상으로 기억되는 만남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우리는 환자의 가장 약한 순간을 맡아 지킨다. 깊이 알지 못해도, 그 사람의 오늘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짧은 순간에 감정까지 놓치지 않는 간호사가 되는 것. 그것이 응급실에서의 만남이고, 내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응급간호팀
고준호 주임
응급간호팀 고준호 간호사는 환자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함께하며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인 응급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매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환자의 회복을 돕고 동료들과 협력하며 배워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뉴스룸 칼럼을 통해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들, 간호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고민, 그리고 응급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들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