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일러스트)
10년 전 갑상선 결절을 진단받고 꾸준히 고주파 열치료를 받아온 인도네시아 환자가 있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발길이 끊겼던 그녀가 다시 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우리 병원을 찾은 건 유난히 추웠던 2024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공항에서 곧장 달려온 환자와 함께 숨 가쁘게 진료과로 뛰어갔지만 이미 진료는 마감된 뒤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로비에서 환자를 기다리던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긴박한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에게 환자 정보를 전달하고 충격에 빠진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곁을 지켰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또다시 내일을 기약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진행한 환자의 초음파 검사에서, 왼쪽 빗장위림프절에 암으로 의심되는 결절이 발견됐다. 과거 유방암의 전이가 의심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자 만료일은 다가왔고, 함께 온 가족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타국에 홀로 남겨진 환자가 마음에 걸려 어느 퇴근길에 그녀와 함께 ‘닭한마리’를 먹으러 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앞에 두고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남편은 날 많이 사랑해줬어.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환자가 짊어진 마음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국물을 후후 불어 그녀의 그릇에 담아줄 뿐이었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그녀에게 한국의 추위는 유독 시렸을 것이기에 그날만큼은 음식으로라도 그 마음을 녹여주고 싶었다.
이후 한 달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편은 에크모와 투석에 의지해야 했고 진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의식을 되찾은 후에는 섬망 증세로 아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중환자실을 수시로 오가며 소통을 돕고, 그녀가이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했다.
진심이 닿은 것일까. 치료를 주저하던 그녀는 우리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남편도 기적적으로 회복해 재활 병원으로 전원하게 됐다. 한 달 뒤 정기 추적 관찰을 위해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와 남편은 이전보다 환한 얼굴이었다. 한국에서 연말과 새해를 보내고 본국에서 치료를 이어가기로 한 환자는 지금도 종종 이메일로 안부를 묻곤 한다.
환자 곁에서 전인적인 간호를 실천하겠다는 초심으로 여러 부서를 거치며 나의 간호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국제진료센터에서의 간호는 환자의 병원 생활 전반을 아우르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함께 헤쳐 나가는 일이다. 앞으로도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투병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시린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싶다. 그리고 그 곁을 오래, 든든히 지키는 간호사로서 묵묵히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