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처음 만난, 낯선 산을 오를 때 -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 환아 이야기 2026.04.01

강산(남, 12)이에게 나타나는 이상한 일들을 설명해 주는 병원이 없었다. 그러니 치료도 요원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전원 왔던 날, 증상을 들은 의료진이 말했다.

“아마도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일 거예요.” 이곳에선 단번에 알아보았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아쉬움 속에 기나긴 희귀암 치료가 시작됐다. 

 

이상한 조짐들 
2학년 말쯤 지루성 피부염이 시작이었다. 염증이 잦았고 어느 순간부턴 소변을 참지 못하고 물도 너무 많이 마셨다. 정수기 얼음이 만들어지는 시간도 기다리지 못해 화를 낼 정도였다. 병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병원에선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목의 염증도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넘겼다. 열이 심하게 나던 밤, 응급실에 가자 입원 치료를 권했다. 그리고 이비인후과, 비뇨의학과, 피부과의 진료를 두루 받았지만 하나의 진단으로 모이진 않았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로 데려가야 할지 몰라 답답한 나날이 1년 이상 지속됐다. 아이의 성장도 어느 순간부터 멈췄다. 배고프다던 아이는 밥 한두 숟가락을 뜨고 나면 그대로 토했다. 끊이지 않는 기침과 흉통으로 병원에 데려가자 1년 전의 폐가 아니었다. 기흉은 물론 물방울 모양의 기포가 가득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산이의 폐보다 심각해 보이는 사진은 없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들은 놔두면 낫는다는 이야기에 속은 기분이었다. 아이라서 우리가 잘 몰랐던 것이다. 더 해 줄 게 없다는 의료진의 이야기에 자정이 넘은 시간,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드디어 물음표가 풀렸다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다. 아침 일찍 회사에 휴가를 내고 입원 짐을 챙겨 나왔다. 산이를 만나러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이라는 희귀암이었다. 병명을 세 번 듣고도 너무 낯설어 문자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랑게르한스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불어나 몸속 장기들을 파고들며 괴롭히는 병이었다. 오랜 물음표는 풀렸지만 여기선 바로 알 수 있는 병명을 이전 병원들은 전혀 몰랐다는 데 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이 희귀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서울아산병원에 온 것이 다행이었다.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은 소아암 중에선 가벼운 축에 속한다는데 산이의 증상은 유별났다. 만나는 의료진마다 “그 병 맞아요?” 물을 정도였다. 특히 폐 쪽으로 종양이 많이 침범해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웠고 받는 치료마다 부작용이 심했다. 혈소판을 수혈할 때는 심한 쇼크가 와서 거친 비명이 이어졌다. 항암을 하면서 폐가 계속 터져 흉관과 흡입기 5개를 단 채로 1년간 누워 지냈다. 앉지도 못하고 두피부터 퉁퉁 부어 눈을 뜨지도 못했다. 때때로 호흡곤란이 오면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의료진이 산이를 즉시 에워싸고 응급 조치에 들어갔다. 좀처럼 차도가 보이지 않자 항암을 중단하고 무균실로 들어갔다. 이식을 염두에 두고 온 가족이 기증자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기증도 여의치 않았다. 산이의 회복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될까?” 남편에게 참고 참아온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고민해서 뭐 해!”라며 남편은 한 뼘 길어진 걱정을 싹둑 잘라냈다. 솔직히 산이의 치료 목표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의료진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서 매일 ‘오늘만’을 버텼다. 
  


고요한 싸움 
아이들은 아프고 힘들면 말이 없어졌다. 산이가 그랬다. 좋아하던 게임도 하지 않았다. 병동에 말하고 웃는 아이들은 컨디션이 좋은 것이고, 아프다며 울고 소리를 지르면 그래도 힘은 남아 있구나 싶었다. 산이에게 환자의 삶만 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엄마로서 해줄 것이 없었다. 2인실에서 6인실로 옮겨달라고 부탁하고 사람들 소리라도 들려주려 했다. 병동의 밸런타인데이 이벤트 소식에 산이는 오랜만에 들뜬 표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다시 시무룩해졌다. 괜찮다가도 퇴원 이야기만 나오면 꼭 문제가 생겼다. 그때마다 마치 우리의 설레발 때문에 일을 그르친 양, 산이와 나는 말없이 누워 서늘해진 마음을 삭여야 했다. 


흉막유착술은 일곱 번까지 세다 멈췄다. 시술 후 금식과 처치실 치료가 이어지는 과정을 아이는 버거워 했다. 치료가 되는 건지, 아이를 괴롭히는 건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어느새 숨을 쉬지 못하는 공포감이 생긴 산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계속 옆에 있기를 바랐다. “처음부터 세게 고생한 친구들이 나중에 더 건강해요.” 의료진의 말이 힘들 때마다 생각났다. 산이에겐 의료진을 믿는 모습을 보여주고, 의료진에겐 산이가 평소와 달라진 부분을 빠르게 알리며 엄마의 역할을 하고자 부단히 애썼다. 

 

 

390일 만의 외출 그리고… 

갑자기 오른쪽 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고경남 교수님은 이대로 혈구 수치를 끌어올리면 강아지를 키워도 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며 산이를 안심시켰다. 2월에 진단받으러 들어가서 다음해 3월이 돼서야 우리는 병원을 나섰다. 390일 만의 퇴원이었다.

 
산이는 학교의 첫 건강장애학생으로 인터넷 수업을 들으며 컨디션에 따라 등교해 자율 학습을 받고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이 많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된 일상이 다행스럽다. 퇴원 후 감기에 걸려 응급실에 갔을 때 처음 보는 교수님이 “네가 강산이구나?”라며 산이를 알아보았다. “제가 작년 내내 산이 엑스레이를 무진장 봤거든요.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친구 맞죠?” MR실이나 진정치료실에 가도 산이를 기억해 주는 간호사 선생님이 많았다. “이제 달린 관이 없어서 조금 편안해졌지?” 우리는 146병동이라는 작은 섬에 내내 갇혀 지낸 줄 알았다. 한 걸음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굽이굽이마다 병원의 수많은 눈과 마음이 산이를 앞으로 밀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높고 험난한 산이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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