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축측삭경화증(ALS)과 같은 신경퇴행 질환은 환자와 보호자가 질환의 특성과 치료의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신김현진 교수는 환자와 치료 계획을 함께 세우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치료를 개발할 원동력을 얻는다.
▲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현진 교수
‘뇌’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김현진 교수는 고등학생 시절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읽으면서였다. 뇌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과학자의 길도 고려했지만 그의 선택은 실제 환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질병의 근본 기전을 탐구할 수 있는 신경과 의사였다.
“우리 병원에 지원한 것도 신경계 질환 환자를 가장 폭넓게 경험할 수 있고, 연구와 임상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해외 학회 발표를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가 좋았고 전공의, 전임의 때 단기 해외 연수도 다녀올 수 있었죠. 그래서 많은 기회와 성장을 안겨준 병원에 스태프로 임용된 것이 영광인 동시에 남다른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신경근육 질환과 신경면역 질환 환자를 주로 치료한다. 유전·자가면역·신경퇴행 질환 등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진단이 까다롭고 치료법 또한 제한적인 경우가 많은 분야다. 특히 초기 진단에 따라 치료 방향과 예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을 통해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근본적인 치료가 어려운 질환은 환자의 기능과 삶의 질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장기적인 경과를 함께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보호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치료 가능성과 한계를 솔직하게 공유하려고 해요.”
그는 질환의 진단과 환자 상태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어려운 내용도 환자와 보호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끌어 간다. 또한 재활치료, 호흡 관리, 영양 관리 등 다학제적으로 접근하며 최선의 치료를 찾아 나선다.
“다른 병원에서 진단이 안 되거나 치료되지 않았던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 와서 좋은 결과를 얻을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현진 교수
포기 대신 다음을 준비하다
치료 가능성을 고민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의학적 한계뿐 아니라 제도적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20대 환자가 연하곤란과 구음장애로 내원했다. 중증근무력증이나 뇌졸중을 의심했으나, 여러 검사를 통해 근위축측삭경화증을 진단할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발병한 유전형 ALS로 진행을 늦추는 것 외에는 근본적인 치료가 어려웠다. 김 조교수는 논문을 찾아보며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 가능성을 검토하고, 학회에서 만난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닐 슈나이더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개별 치료를 위한 약물 제공 가능성을 논의했다. 투약을 위한 절차를 적극적으로 진행했지만 국내 승인 절차에서 좌절되면서 실제 치료로 이어지지 못했다.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어도 한 명의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본 경험이자,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임상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재 가능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실제 적용 가능한 치료를 만드는 의사과학자가 되고 싶은 목표가 더욱 분명해졌죠.”
나를 움직이는 남은 문제들
김 조교수는 임용 전 카이스트에서 2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다. ALS 환자의 뇌 조직으로 체세포 돌연변이를 연구한 내용을 지금까지 이어오며, ALS의 진행과 예후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와 새로운 치료 표적에 관해 연구 중이다. 또한 염증성 근육병의 면역학적 기전을 이해하고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요소들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신경계 질환 분야에서는 하나의 질환으로 묶이던 질환들을 점차 세분화하고 각 아형에 맞춘 정밀 의료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다양한 치료 방법이 개발되면서 초기 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가 2차 치료에서 호전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환자 개개인에 가장 적합한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실제 임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정밀한 치료 전략을 제시하는 것까지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지만 언젠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래왔고요.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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