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와 제도 그 사이를 잇는 간호 2026.06.12

환자의 치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암병원간호2팀 백영애 차장

 

(AI 활용 일러스트)

 

부신피질암은 국내에서 연간 약 30~50명에서 발생하는 극희귀암이다. 이 질환 환자들은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리소드렌’을 최소 2년 이상 복용해야 하며, 전이성환자에게는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유일한 치료 옵션으로 몇 개월의 공백만으로도 질병의 경과가 달라질 수 있다.


2024년 11월, 환자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이 약제가 국내 수입을 담당하던 제약사의 사정으로 공급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품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약국 재고는 빠르게 줄었고, 일부 환자들이 약을 찾아 전국의 약국을 전전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환자들의 불안도 커져갔다. “이 약, 정말 다시 들어오긴 하는 건가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죠?” 쏟아지는 질문 앞에 확신 있는 답을 줄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제약사조차 답을 내놓지 못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문득 과거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10년 전 리소드렌은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받았던 약제였다. 국내 수급이 어려운 의약품을 대신 구매해 공급하는 기관인 만큼 이번에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곧바로 센터에 연락해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고 담당자는 신속한 검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했다. 그러나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제비 외에 관세와 부가세, 운송료 등 제반 비용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했다. 한 통에 55만 원이던 약값은 135만 원으로 크게 올랐고 신청부터 수령까지는 8주 이상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상태가 나빠지면 어떻게 하죠?” “약이 늦게 도착하면 의미가 있을까요?” 환자의 질문들은 곧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그래도 약을 구할 수 있다면 치료를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 절실함 앞에서 나는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약을 구해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됐다.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종양내과 박인근 교수님의 도움으로 대한종양내과학회를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긴급도입 지정 의약품’ 신청을 추진했다. 긴급도입 지정 의약품으로 지정되면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서 재고를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회는 전례 없는 절차를 위해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박 교수님은 근거 자료와 연구 데이터를, 나는 국내 수요와 예상 처방량을 정리했다. 약제팀도 병원약사회를 통해 힘을 보탰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진 노력은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갔다. 올해 1월, 드디어 처방과 동시에 원내약국에서 약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 환자들은 더 이상 약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필요도, 여러 약국을 전전할 필요도 없어졌다. 약값 역시 이전보다 안정됐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은 결코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환자를 위해 움직인 의료진과 학회, 희귀의약품센터, 그리고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많은 이들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환자와 제도를 잇는 작은 연결고리였을 뿐이다.


이번 일을 통해 환자는 치료를 받는 대상일 뿐 아니라 불안과 선택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며, 간호사는 그 시간을 이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환자의 치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그 사이를 단단히 잇는 간호를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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