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아산재단과 함께라는 자부심 2026.06.01

아산재단과 함께라는 자부심

19899년 개원 당시 서울아산병원 전경 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우예선 차장.

 

다가오는 6월 23일은 서울아산병원의 37번째 개원기념일이다. 우리나라 의료를 선도하는 병원으로 발전해 온 과정에는 성장의 기틀을 닦은 수많은 직원이 있다. 원무팀 우예선 차장은 1985년 정읍아산병원에 입사했고, 1988년 10월 개원준비팀에 합류해 서울아산병원의 시작과 발전을 모두 함께했다. 지난 5월 31일 퇴임한 우예선 차장에게 아산사회복지재단과 함께한 42년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편집실>

 

 

▲서울아산병원 원무팀 우예선 차장

 

아산재단과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4년 9월, 현대건설 공채에 지원했다. 면접 때 “서울에서 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는데 정읍아산병원으로 배치됐다. 고향이 정읍이어서 그랬나(웃음). 3년여를 근무하다 개원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으로 발령받았다. 스무 살에 입사해 머리가 희끗해져 떠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40년 넘게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부심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 설립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는 긍지, 그리고 서울아산병원이 우리나라 의료를 선도하는 병원으로 발전하는 데 함께한다는 벅찬 마음이 있었다. 정읍에서 모든 원무 업무를 수작업으로 처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원무 전산화와 카드·현금 수납 키오스크 도입 등에 참여했고, 병상 배정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며칠 밤을 새며 일할 수 있던 건 병원과 환자를 위한 일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일과 가정 모두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결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힘든 순간도 많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스트레스가 컸던 탓인지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출산했다.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해 출산 당일 밤 사무실로 내려와 업무를 마무리하고 병실로 돌아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컸다. 언젠가 성인이 된 아이들이 내게 자랑스럽고 존경한다고 말해주었다. 힘든 만큼이나 보람된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2004년 5월, 원내 전산망이 웜바이러스 ‘새서’ 침투로 마비된 적이 있다. 진료 예약과 접수, 입·퇴원 수속, 건강보험 조회 등 모든 업무가 멈췄고 외래는 길게 줄을 선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전산은 하루 만에 복구됐지만 모든 업무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직원 모두가 힘을 모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단단하게 뭉치는 단합력은 우리 병원의 저력이라고 느낀다. 1990년 수해와 2015년 메르스, 코로나19 팬데믹과 의정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되어 위기를 이겨내는 DNA가 있기에 지금의 서울아산병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혼자였다면 걸어올 수 없었을 길이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들 덕분에 정년까지 행복한 병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될 직원 여러분도 힘이 되는 소중한 동료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직장 생활을 하길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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