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활용 일러스트)
투석실을 찾는 환자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곳에 온다. 당뇨로 인해 신기능이 점차 악화된 환자도 있고, 선천적인 질환으로 오랜 시간 투석을 이어가는 환자도 있다. 갑작스러운 급성신부전으로 예상치 못하게 투석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치료를 받지만 그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삶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간호사로서 나는 매일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다. 반복되는 치료 과정 속에서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투석은 단순히 혈액을 정화하는 의료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환자에게 삶의 일부이며 때로는 가장 힘든 순간과 맞닿아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당뇨를 원인으로 투석을 시작한 40대 남성 환자가 있었다.
선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타 병원에서 전원되어 온 환자였기에 전원 기록을 확인하고, 동정맥루 상태를 살피며 투석을 준비했다. 바늘을 삽입하기 전, 긴장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가벼운 대화를 건넸다.
“오늘 외래 보고 오셨어요?”
“투석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짧은 질문과 대답이 오가던 중, 환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 주에 아이가 태어났는데요… 쌍둥이에요.”
그 말에 자연스럽게 축하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이어진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둘 다…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요.”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고, 환자는 아이들 곁을 지키기 위해 병원을 떠나지 못한 채 본원에서 투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이를 기다려왔을 시간,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되었어야 할 가족의 일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전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환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못나서 그런 건지… 이름을 아직 못 지어줘서 그런 건지… 아이가 아픈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래서… 바로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의학적인 설명이나 위로의 말보다 그저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것이 더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석은 예정된 시간 동안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치료다. 간호사는 혈류 속도와 압력,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안전하게 치료가 진행되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날의 투석 시간은 단순한 치료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기계는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옆에서 환자가 감당하고 있는 시간은 결코 일정하지 않았다. 기다림과 불안, 그리고 책임감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환자의 소식을 다시 듣지는 못했다. 투석실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이 오가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함께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렇게 한 장면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무르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 환자와 그 가족을 떠올린다. 그날 태어난 두 아이가 지금은 조금 더 건강해졌을지, 부모의 품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조용히 상상해본다.

내과간호2팀
부소혜 주임
투석실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의 일상과 생명 유지 치료의 의미를 바탕으로 간호사의 시선에서 바라본 의료 현장과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투석실 간호사로 근무하며 만성질환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통합내과병동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바쁜 근무 속에서도 러닝과 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며 일과 삶의 균형 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들을 글로 풀어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