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생성 일러스트)
오늘도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등불을 든 여인(The Lady with the Lamp)'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그러했듯, 우리 병원의 병동 곳곳에도 저와 같이 밤을 지키는 의료진이 있습니다. 연속된 야간 근무가 쉽지만은 않지만 힘든 내색보다는 오늘도 환자 곁을 지키기 위해 병실 문을 엽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101병동의 새벽은 좀처럼 조용할 틈이 없습니다. 불 꺼진 복도에 환자 모니터 알람 소리가 울리고, 누군가는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통증에 몸을 뒤척이는 환자도 있고, 불안한 마음에 호출벨을 반복해서 누르기도 합니다. 그저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만으로 긴 밤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입·퇴원 외에는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고 정해진 면회 시간 외에는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효율적’이라고 하지만, 병동에서 마주하는 것은 숫자나 정책이 아니라 결국 사람입니다. 아픈 사람, 두려운 사람, 견뎌야만 하는 사람…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그런 환자들과 자주 눈을 맞추게 됩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보호자가 병실을 함께 지켰기에 환자의 외로움 역시 가족의 그림자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감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식사 시간에도, 자세를 바꿔드릴 때에도, 새벽에 혈압을 재러 병실에 들어설 때에도 환자들은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합니다.
의사가 수술하고 처방을 내린다면 간호사는 긴 회복의 시간을 함께 버팁니다. 고열로 젖은 환의를 갈아입히고, 의식이 흐려진 환자의 손을 잡아줍니다. 보호자 대신 식판을 정리하고, 때로는 말없이 눈물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란 결국,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새벽 세 시의 병동은 사람을 진실되게 만듭니다. 낮 동안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짓던 환자도 깊은 밤이 되면 조용히 약해집니다. 암 수술을 마친 한 환자는 처치를 위해 들어선 제게 인기척을 느끼고 속삭이듯 묻습니다.
“간호사 선생님… 지금 이렇게 아픈데, 저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들어줄 누군가의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지금 정말 잘 버티고 계세요.”
어쩌면 간호사란 의료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곁을 지키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그래서 더욱 치열합니다. 보호자가 없는 만큼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자주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밉니다. 환자의 한 분 한 분의 이동과 체위변경, 식사와 개인위생, 통증과 불안, 낙상과 욕창 예방, 배설과 수면까지 함께 돌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도 업무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게 늘 도와주다 보면 지치지 않아?”
물론 지칠 때도 많습니다.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온몸이 무너질 것 같은 피로를 안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일이 바빠 한 입밖에 마시지 못한 채 식어버린 커피를 버리는 날도 있고, 하루 종일 뛰어다녔는데도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수많은 처치에도 상태가 회복되지 않아 결국 중환자실로 향하는 환자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다시 병동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물 한 잔 들기도 벅찬 사람, 집에서는 가족의 든든한 어른이었지만 병실 안에서는 스스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 수술의 고통보다 앞으로의 삶이 더 두려운 젊은 환자들. 그들은 오늘도 누군가가 곁을 내어주기를 기다립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지 생명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함께 무너진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환자들이 연신 미안하다고 말할 때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한 거예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희는 그런 순간에 곁을 지키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다시 불러주세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병실 문을 엽니다.
누군가는 새벽에 열이 오르고,
누군가는 섬망으로 침대에서 내려오려 합니다.
누군가는 수술 부위를 움켜쥔 채 신음하며 긴 밤을 견딥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달려갑니다.
“괜찮습니다.” 라고 말해주기 위해,
“혼자가 아니에요.” 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어쩌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간호사들은 매일, 누군가의 가장 어두운 시간 한가운데를 함께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암병원간호1팀
김치호 대리
병동에서 마주한 특별한 순간들,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간호 에세이를 전합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보호자 없이 환자들이 최상의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이곳에서 환자들과의 병원 생활을 되돌아보며 '이상적인 병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