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르포] 몽골 의료협력팀 동행기 “봉사를 넘어 협력으로” 2026.08.19

몽골에서의 일주일, 봉사를 넘어 협력으로 

- 몽골 의료협력팀 에르데네트 동행기 -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북서쪽으로 430km 떨어진 광산 도시 에르데네트. 서울아산병원 직원들로 구성된 의료협력팀이 8월 3일부터 나흘간 이곳에서 현지 주민 750여 명을 진료하고 돌아왔다. 의료진은 모든 활동을 ‘봉사’가 아니라 ‘협력’이라 불렀다. 한 번의 도움으로 그치지 않고 몽골 현지의 의료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다짐이었다.      

 

(AI 생성 일러스트)

 

“서울아산병원이 온다”

몽골 북부 권역은 전국에서 암 발생률이 가장 높고 암 사망률은 두 번째로 높다. 이 지역 암 환자 10명 중 7명은 말기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다. 낮은 치료 접근성 때문이다. 북부 권역은 에르데네트에 위치한 오르혼 아이막(몽골의 광역행정구역)을 비롯해 볼강·후브스굴·셀렝게·다르항 아이막까지 무려 약 19만 4,000㎢, 남한 면적의 2배 규모다. 52만여 명의 북부 주민은 암 치료를 받으려면 울란바타르까지 멀게는 편도 700km를 오가야 한다.
 
그래서 몽골국립암센터 분원인 북부권역암센터가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7층 건물에 18개 진료실, 88개 병상을 갖췄다. 조기 검진부터 수술, 항암, 사후관리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개원 후 6개월 동안 55건의 암 수술을 했다. 새로 발견된 암 29건 중 19건이 조기암일 정도로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았다. 구리 광산으로 유명한 에르데네트는 광산 노동자 비율이 높고 호흡기 환자도 많다. 그러나 이 병원에는 현재 호흡기 전문의가 없다. 높은 암 발병률에도 암 치료 노하우가 부족하다. 숙련된 의료진의 치료 경험이 필요한 때, 몽골 보건부가 서울아산병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왼쪽) 몽골 북부권역암센터에서 개최한 서울아산병원 환영식에서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의료협력팀장)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 자흐블란 북부권역암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몽골의 외과의사들은 수술을 잘한다. 하지만 암 진단부터 수술 전후 관리 등 전체 치료 과정에 대한 숙련도나 질적 수준은 낮은 편이다. 의료진 모두 선진 의료를 배우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서울아산병원은 한국 의료를 선도하는 병원이다. 우리 의료진에게도 큰 배움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 자브흘란 북부권역암센터장
 
사실 몽골에서 ‘서울아산병원’은 낯선 이름이 아니다. 오랜 기간 몽골에 간이식 노하우를 전수해 왔고, 현 몽골 총리가 몇 해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아산병원 의료협력팀이 진료를 시작하던 날 열린 환영식에서는 몽골 국회의원, 오르혼 도지사 등과 수많은 주민들이 의료진을 맞이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울아산병원 몽골 의료협력팀 직원들이 에르데넷 북부권역암센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흘간 만난 750명
8월 3일 오전 10시 30분, 내과·호흡기내과, 유방외과, 영상의학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진료가 시작됐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현지 의료진, 그리고 통역 자원봉사자가 하나 되어 치료의 힌트를 놓치지 않기 환자의 말과 표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기침과 가래를 참아온 환자,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어느 날부터 가슴에 만져지는 멍울 때문에 불안한 환자…. 대기 줄은 복도로 길게 이어졌다. 진료과마다 하루에 15~20명 진료를 보던 병원에 첫날에만 400명 넘게 몰렸다. 당초 계획한 사흘로는 진료를 마칠 수 없었다. 의료진은 예정에 없던 4일차 오전 진료를 추가로 진행했다. 그렇게 다녀간 환자가 총 750명이었다.
 
(왼쪽부터)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 유방외과 정일용 교수, 영상의학과 신지훈 교수가 몽골 북부권역암센터에서 현지 환자에 대한 진료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각종 초음파 검사도 진행됐다. 영상의학과 신지훈 교수는 복부·갑상선 초음파를 80여 건 진행했다. 간낭종, 지방간, 간염 등 간질환 환자가 많았다. 몽골 지역에 간암 환자가 많다는 통계와 맞아떨어졌다. 유방외과 정일용 교수는 유방 초음파 150건과 유방 조직검사 6건을 시행했다. 병원에 상주하고 있는 유방외과 전문의가 없기에, 두 달에 한 번 울란바타르에서 방문하는 유방외과 의사 1명으로는 진행이 불가능한 검사들이었다.     
 
“북부권역암센터에는 유방 전문의가 없기 때문에 암의 의심돼도 정밀한 검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숙련된 전문의들이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진행해 주니 환자들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록 지금은 검사 결과가 나와도 치료를 받으려면 울란바타르로 가야한다. 언젠가 신규 의사를 채용하교 교육해, 직접 환자를 치료하게 되기를 바란다.”  
 - 두경부·갑상선외과 아나르체체그 의사
 
(왼쪽) 유방외과 정일용 교수(오른쪽 세 번째)가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무크 차트랄 씨에게 재활 스트레칭을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정일용 교수가 북부권역암센터 아나르체체그 의사와 CT 결과를 바탕으로 유방암 치료 계획을 상의하고 있다.
 
무크 차트랄 씨(47세, 여)는 2년 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림프절에도 전이된 상태였다. 몽골 국립암센터에서 유방암 수술을 했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매년 추적 검사를 받으려면 울란바타르까지 오가야 하는 상황. 올해는 에르데네트를 찾아온 의료협력팀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검사를 받았다. 림프절 절제로 인해 수술 후 팔이 잘 올라가지 않던 환자는 정일용 교수를 만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배우고 돌아갔다.
 
“울란바타르까지 가는 데만 8시간인데, 오늘은 20분 만에 와서 편하게 검사를 받았다. 수술이 아주 잘 됐고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다. 에르데네트까지 찾아와 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감사하다. 새로 배운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겠다.”  
 – 무크 차트랄 씨
 
광산에서 일하는 뭉흐바야르 씨(32세, 남)는 건강검진 때마다 폐 영상에서 점들이 보인다며 정밀검사를 권유받았다. 현지 의사는 양쪽 폐 모두 수술로 절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단다.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는 다른 답을 말했다. 환자의 연령과 면역력 등을 고려했을 땐 주기적인 객담 검사 등으로 경과를 관찰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환자는 수술 없이도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천식과 만성기침 등 호흡기 환자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정확한 진단이 되지 않아 금방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인데도 악화되는 느낌이었다. 현재 호흡기 전문의가 없어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최적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몽골 의료협력팀장)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가운데)가 몽골 현지 호흡기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끝없는 배움의 장
나흘간의 빠듯한 진료 일정에도 두 나라 의료진은 치료 노하우와 최신지견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몽골 의료진은 현지 환자의 암종별 분포와 특성을 소개했다. 이어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유방암 진단과 수술, 카테터 에탄올 경화술을 통한 자궁내막종 치료, 만성 폐쇄성 폐질환과 폐암 치료, 중환자실 암 환자의 폐색전증 치료, 암 환자 간호 노하우 등을 강의했다. 이틀에 걸쳐 온라인으로 진행된 콘퍼런스에는 이 병원뿐 아니라 지역 인근 병원과 울란바타르 국립암센터까지 참여했다.
 

간호교육행정팀 김지혜 차장(왼쪽)과 영상의학과 신지훈 교수(오른쪽)가 몽골 현지 의료진에게 암환자 간호 및 자궁내막종 치료에 대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지 의료진이 간호를 주제로 한 강의를 먼저 요청해 왔다. 간호대학원 진학 등을 위해 한국을 찾는 현지 간호사가 많을 정도로 몽골은 우리나라 의료에 관심이 많다. 우리 병원의 간호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현지 의료에 기여할 수 있어서 기뻤다.” 
 – 간호교육행정팀 김지혜 차장(간호사)
 
"작년 몽골 의료봉사에 이어 올해도 이곳을 방문하면서, 단순 진료를 넘어 현지 의료 역량 강화에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유방암 진단과 수술에 대한 몽골 의료진들의 뜨거운 학구열을 보며 지속적인 지식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 유방외과 이새별 교수
 
▲ 유방외과 이새별 교수가 몽골 현지 의료진에게 유방암의 치료법에 대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술실에서도 치료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정일용 교수는 현지 흉부외과 전문의가 집도하는 유방암 수술을 참관했다. 여섯 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 끝에 병기가 3기에서 1기 수준으로 낮아진 환자였다. 정 교수는 전날부터 이 환자의 수술 방법과 향후 치료에 대해 의료진과 상세한 토의를 진행했다. 유방 수술이 극히 드문 이곳 의료진에게는 현장에서 함께 환자 케이스를 논의하는 경험이 아주 소중하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초음파와 조직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함께 치료 계획을 상의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환자를 위해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 두경부·재건외과 간에르데네 의사
 
▲(왼쪽) 유방외과 정일용 교수가 북부권역암센터 간에르데네 의사와 함께 수술 예정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오른쪽)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가 현지 의료진과 함께 환자의 검사자료를 보며 치료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해외 의료협력을 처음 경험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도 이곳은 더없는 배움의 현장이다.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사흘 반나절을 초음파 기계와 함께했고, 중환자실 간호사가 외래 진료실에서 만성질환 환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공의는 수많은 환자 케이스를 접하며 병원에서는 해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수련을 받았다.
 
“병동과 수술실에서 주로 수련을 진행하다 보니 환자를 폭넓게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어떻게 환자를 진찰하고 검사를 진행하는지, 환자마다 어떤 치료 전략을 구상하는지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진료실에서 대화를 나누며 환자를 위해 장시간 머리를 맞대다보니 다른 직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것 같다.”        
 - 외과 이의주 레지던트
 
지금껏 해오던 업무가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약국을 담당한 간호사는 만성 간질환으로 약 처방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소화기내과 병동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건넸다. 재활의학과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무릎 통증으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의 다리를 만져보다 심각한 림프부종이 의심돼 성형외과 진료를 의뢰하기도 했다.
 
“단순한 관절염이라기엔 한쪽 다리만 유독 부어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재활의학과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림프부종 케이스를 많이 접했는데, 이 환자는 진료가 필요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모르고 지나가지 않게 진료로 연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 내과간호2팀 양이레 사원(간호사)
 
 
▲(왼쪽) 직접 시행한 초음파 검사에서 유방암 의심 환자를 발견하고 조직검사로 연계한 외과 이의주 레지던트
(가운데) 약국팀 지원을 맡아 환자들에게 전달할 약을 포장하고 있는 중환자간호팀 양아영 대리와 내과간호1팀 송선희 사원
(오른쪽) 호흡기내과 이세원 교수와 함께 천식 환자에게 약제 사용법을 알려주고있는 내과간호2팀 양이레 사원

 

협력은 계속된다
의료협력팀은 매일 밤 한자리에 모였다. 낮에 만난 환자 케이스를 공유하고 소회를 나눴다. 의료진은 이번 진료가 다른 의료봉사와는 달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한 약과 처치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선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이 검사결과지를 잔뜩 들고 진료를 보러 왔다. 현지에서 아무리 검사를 많이 해도 정확하게 해석하기가 쉽지 않고, 필요한 치료를 결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현지 의료진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유방외과 정문용 교수
 
(왼쪽) 의공팀 이성범 대리가 노후 의료기기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오른쪽) 몽골 북부권역암센터 의료진과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나흘간의 진료 후기를 나누고 있다.
 
의료협력팀은 나흘간의 진료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울란바타르로 향했다. 귀국을 앞두고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 병원과 의료협력을 희망하는 병원 두 곳을 찾았다. 현지 의료진은 중증·고난도 치료 술기와 의료장비 유지보수 노하우 전수를 희망했다. 한 번의 ‘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는 만남이었다. 이번 활동을 마무리하는 순간, 다음 내딛을 의료협력의 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해외 유수 병원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애쓴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아산병원에서의 해외의학자 연수, 지속적인 의료협력팀 파견 등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봉사가 아니라 협력이라 부른 것처럼 우리의 노력이 몽골 현지의 의료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호흡기내과 홍상범 교수
 

 

2009년부터 해외 의료봉사·기술전수 이어와

서울아산병원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의 설립 이념 아래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 주민들을 치료해 왔다. 2009년부터는 봉사 지역을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네팔 등 16개국을 찾았으며, 이번 몽골 방문까지 총 59회의 의료봉사를 시행했다. 현지에서 수술할 수 없는 중증 환자를 서울아산병원으로 초청해 무료로 치료하는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의료 저개발 국가에 고난도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아산 인 아시아(Asan in Asia)’ 프로젝트도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450여 명이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방문해 생체간이식, 암 수술, 치료내시경 기술 등을 전수했다.
특히 몽골은 서울아산병원과의 협력 관계가 더욱 깊다. 간암 사망률 전 세계 1위임에도 간이식을 할 수 없어 자국 환자를 해외로 보내야 했던 몽골을 위해, 2010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생체간이식 전수에 나섰다. 2011년에는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팀이 몽골 최초의 생체간이식을 집도해 성공했다. 16년 동안 현지 의료진 225명을 초청해 연수를 진행했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210여 명이 현지에서 간이식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난해에는 현지 병원이 누적 생체간이식 300례를 넘어서며 완전한 간이식 자립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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