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응급실 진료지원전담간호사(Acute Care Nurse)다. 중증외상 환자와 외과 환자의 초진을 지원하고, 급성 복통 환자가 신속하게 수술적 치료로 연계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작년 여름, 3kg 아령이 복부로 떨어진 뒤 통증이 지속돼 119로 이송된 젊은 여성 환자를 만났다. 보호자 없이 홀로 복부를 감싼 채 통증을 참고 있던 환자의 배꼽과 흉부 주변에는 여러 개의 멍이 보였다. 환자는 운동을 과격하게 한 데다가 자신이 요리사라 여기저기 부딪히는 일이 많다고 했다. 나는 혈액검사와 CT검사를 안내했고, 곧 CT에서 복강 내 공기가 확인됐다.
외과 협진이 의뢰돼 다시 찾아간 환자 곁에는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어딘가 어색했다. “아까 다 말씀드렸잖아요.” 환자는 대화를 피하려는 듯했다. 그사이 복통은 더욱 심해졌고 좌상복부와 심와부 압통에 더해 반발통과 복부 강직도 새롭게 나타났다. 전담교수님은 십이지장 천공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술 동의를 위해 보호자와의 관계를 묻자 환자는 “친구”라고 답했다. 가족에게 연락이 필요하다는 말에 환자는 짧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돌아가셨고 언니와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지만 바로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환자는 직접 수술동의서를 작성한 뒤 수술실로 이동했다. 그 사이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후 전담교수님으로부터 환자의 몸 여러 부위에서 발생 시기가 다른 멍과 외상 흔적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오늘 본 모든 장면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됐다. 다시 동생에게 연락했고, 환자가 동거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을 받아왔으며 함께 왔던 친구가 바로 그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시 ‘취약환자 보호에 관한 규정’을 확인하고 전담교수님과 상의해 신고를 결정했다. 동생의 동의를 받아 경찰에 신고하고 중환자실에도 상황을 공유해 가해자의 면회를 제한했다. 근무를 마칠 무렵 병원에 도착한 동생에게 경과를 설명하자, 동생은 “부모님도 안 계신데 언니가 그런 일을 겪고 있었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다음 날 로비에서 다시 만난 동생은 수술을 잘 마쳤고 신고를 도와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지금은 치료와 회복이 먼저이니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며 사회복지팀을 비롯한 병원의 여러 지원체계도 함께 안내했다.
며칠 동안 로비에서 마주치던 동생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환자가 회복돼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고 있으리라는 안도감과 제대로 인사를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종종 ‘촉’이라고 표현하는 순간들이 있다. 돌아보면 그것은 막연한 직감이라기보다 수많은 경험 속에서 환자의 말과 표정, 보호자와의 관계, 행동의 작은 변화를 종합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임상적 감수성에 가깝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그 감수성을 조금 더 믿고, 더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늘도 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위험까지 먼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더 넓은 시야와 따뜻한 관심을 가진 간호사가 되기 위해 응급실에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