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국내 한 의료봉사단체의 해외의료봉사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 몽골 헨티 아이막의 다르항에서 사흘간 진료를 했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차로 일곱 시간, 포장도로가 사라지고 창밖으로 끝없는 초원만 이어지던 길 끝에 자리한 인구 2,000여 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이전부터 가정방문진료를 해오며 늘 마음에 두었던 생각이 있다.
의학이 가장 필요한 자리는 대형 병원의 진료실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자리라는 것이다.
'국민 곁의 일차의료'라는 가정의학의 오래된 명제를 이번에는 국경 밖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의사가 3명뿐인 상황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여러 진료과목을 아우르는 일차의료를 맡았고, 더군다나 전공의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했기에 내게는 이번 활동의 의미가 더 특별했다. 큰 병원의 잘 갖춰진 진료실을 잠시 떠나 두 손과 청진기, 초음파만으로 환자를 마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몽골까지 이끈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은 진료실

현지 진료는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다. 한 문장을 묻고 답을 듣기까지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고, 내가 의도한 질문이 잘 전해지지 못해 답답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더딘 과정 안에서 아이러니하지만 진료의 본질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말이 반으로 줄어드니 남은 것은 환자의 표정과 손짓, 그리고 내 손에 의존해야 하는 진찰 소견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환자들의 태도였다. 이곳 분들에게 부족한 것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본인의 몸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였다. 진료를 통해 이 분들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히면 곧바로 높은 치료 순응도로 이어졌다. 이곳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억에 남았다.

오해를 바로잡는 일도 필요했다. 이곳은 전통 의학의 강한 영향으로 배가 아프면 췌장, 등이 아프면 무조건 신장의 문제라는 통념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신장이 아프다'며 환자들이 우르르 찾아왔는데, 막상 문진과 진찰을 해보니 전형적인 요통이었다. 이에 통증의 원인이 신장이 아니라 척추와 근육에 있음을 통역을 거쳐 설명하고, 문진과 초음파 화면으로 신장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드리자 모두들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설명 하나하나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환자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부족한 의료자원 속의 분투
의료 자원이 넘치는 국내와 달리 몽골 현지에서는 내가 지참한 개인 휴대용 초음파가 내 진료의 유일한 눈이 되어 주었다.
하루 6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그 바쁜 틈을 비집고 매일 10건 이상의 상복부 · 심장 · 근골격 초음파 검진을 시행했다. 밀려드는 대기 줄 사이에서 프로브를 쥐고 간, 담낭과 심장을 살피던 시간이 사흘 내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간암이나 심부전이 의심되는 소견을 발견하기도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화면 속의 흑백 영상은 뜻을 충분히 담고 있었기에 환자를 옆에 앉히고 함께 화면을 짚어가며 설명과 안심을 영상에 담아 건네려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검사받을 곳을 찾아 하루를 꼬박 차를 타고 온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온 의료진이라는 것만으로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그분들의 기대 앞에서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한정된 약제와 최소한의 장비와 인력뿐이라는 사실은 나를 긴장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고 싶어 빈약한 초음파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주어담으려 애썼다.

소아 진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본원에서의 소아청소년과 파견 기억을 톺아보면서 일반 소아 진료뿐 아니라 생후 6개월이 채 안 된 영유아의 진찰과 발달 상담까지 이루어졌다.
성인 진료 역시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가정의학과의 특성상 환자 한 분이 위장 증상과 배뇨 문제, 피부 증상을 한꺼번에 호소하며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한 사람의 진료는 곧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모아 살피는 일이었다. 하나의 주소만 붙들고 세분화된 진료로 나아가는 대신 흩어진 증상을 한데 모아 그 사람 전체를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정의학 본연의 진료라 생각한다.
예상을 벗어난 풍경
막상 가니 예상과 다른 점도 있었다. 음주율은 생각만큼 높지 않았고, 대신 위염과 담낭염이 눈에 띄게 많았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건강검진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내시경과 CT, MRI, 심초음파 영상과 기록을 마치 아기 수첩처럼 인쇄해 한 권씩 지니고 다니는 주민이 많았다. 우리는 모든 기록을 전자 데이터로 흘려보내는데, 이 분들은 몸의 역사를 손에 잡히는 종이로 쥐고 있었다.
다행히 영상 자료는 언어의 장벽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원본 영상 필름을 직접 보며, 주민들이 정작 병원에서 미처 듣지 못했던 설명을 채워드리는 방식으로 건강 상담을 이어갔다. 두꺼운 검사 기록을 갖고있지만 자신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검사와 이해 사이에 놓인 간극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었다. 검진 체계가 갖춰진 곳에 과연 우리의 봉사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사흘이 지나고 나니 분명해졌다.
우리가 채운 것은 장비의 공백이 아니라 설명의 공백이었다. 기계는 데이터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을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해석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돌아오는 짐이 더 무거웠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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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외의 시간도 많은 것을 남겼다. 함께한 봉사자들은 좋은 숙소를 마다하고 매일 아침 텐트에서 찬물로 씻으면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분들이었다.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오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 먼 곳까지 모였다는 사실이 ‘봉사’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 사이에서 나 역시 힘이 닿는 만큼 보태려 애썼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정직하게 마주한 것이야말로 이번 봉사가 준 가장 큰 배움이다.
무언가를 나누러 떠난 길이었는데, 정작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봉사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었던 이 기억을 간직하며, 앞으로도 국민 곁을 지키는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