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일러스트)
병원의 아침은 밤새 환자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감염관리센터 전문간호사인 나는 그날도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11호실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감염성 격리가 필요한 혈액암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이었다.
그런데 문 앞에 놓인 응급카트와 분주하게 오가는 간호사들의 발걸음, 끊임없이 울리는 모니터 알람이 평소와 다른 긴장감을 전하고 있었다. 혈압은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승압제는 하나씩 추가되거나 용량이 늘어갔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숫자들은 환자의 몸이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있는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의 의식은 아직 또렷했다. 나는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건네며 보호자가 없는 이곳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길 바랐다. 환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작은 변화를 살피고, 미처 표현하지 못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것. 그것 또한 전문간호사인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는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지게 됐고,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치료 잘 받고 꼭 올게요.”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희망의 약속이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환자에게 회복해서 다시 만나자며 배웅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그날의 대화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환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제야 내가 만나는 모든 환자들이 두려움과 희망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견디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어느 병실에서는 퇴원을 앞둔 웃음이 들리고, 또 다른 병실에서는 마지막 시간을 준비한다. 같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희망과 이별이 함께 지나간다. 수없이 이별을 마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앞에서 조금 더 차분해졌고 늘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환자와의 이별을 겪을 때마다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워 미뤄둔 말들도 함께 떠오른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은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별을 자주 마주하는 의료진에게 병원은 매 순간 오늘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인사가 얼마나 큰 약속인지를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대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오늘을 정성껏 돌보고 나의 오늘 또한 후회 없이 살아내고 싶다. 모든 순간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기억하며, 나는 또다시 병실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