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일러스트)
간호사들은 온도에 민감합니다. 병실의 실내 온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환자들의 불편함을 먼저 살피게 되고, 그들의 체온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보다 체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한 번 더 상태를 확인하고, 1~2℃의 변화에도 혹시 다른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환자분의 체온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컨디션이 달라지고, 때로는 그날 간호사의 업무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뜨겁다, 차갑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리학에서는 온도를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들의 운동 상태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설명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의 움직임을 우리는 온도라는 숫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병동의 온도는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병동을 이루는 것은 침대와 모니터, 각종 의료기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속상해하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병동의 온도를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마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체온계로 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상대방의 마음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 별 뜻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병동의 온도가 어쩌면 ‘마음의 거리’와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 가깝게 만들고, 차가운 말 한마디는 아무리 가까이 있는 사람도 멀게 느껴지게 합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는 환자와 간호사의 거리가 더욱 특별합니다.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환자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입원 기간 동안 병동은 환자들에게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됩니다. 그리고 간호사는 환자분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같이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투약을 하고, 처치를 하고,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검사와 치료를 준비하면서 환자들의 작은 변화를 살핍니다. 때로는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고, 보호자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환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꼭 의료 행위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라는 아주 평범한 질문도 환자에게는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잠시 눈을 맞춰주는 것,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환자에게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는 것,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검사나 치료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는 것. 어쩌면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그날 환자가 느끼는 병동의 온도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봄날의 18℃와 가을날의 18℃는 같은 온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조금 다릅니다. 봄의 18℃에는 추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는 기억이 있고, 가을의 18℃에는 무더운 여름이 떠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오고 있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같은 온도라도 그 온도를 둘러싼 우리의 기억에 따라 다르게 느껴집니다. 병동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같은 병실, 같은 복도, 같은 침대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차갑고 무서웠던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친절했던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병원을 떠난 뒤 환자가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검사 결과나 투약 시간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힘들었던 순간 곁에 누가 있었는지, 아픈 마음을 누가 알아주었는지, 낯선 병원에서 나를 조금 편하게 해준 사람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업무가 몰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이어 터지는 날에는, 환자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오늘 내가 환자에게 어떤 온도로 다가갔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건넨 말 한마디가 혹시 너무 차갑지는 않았는지, 바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환자와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병동의 온도를 만드는 것이 간호사만의 몫은 아니겠지만,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간호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병동의 온도를 아주 따뜻하게 만들자고 말하기보다는, 너무 차갑지 않은 병동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픈 사람이 조금 덜 외롭고, 낯선 곳에 있는 사람이 조금 덜 불안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병동이면 좋겠습니다. 환자가 병원을 떠난 뒤 “그때 참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만든 온도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저는 어김없이 체온계를 들고 환자분의 체온을 확인합니다. 36.5℃인지, 37℃인지, 어제보다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를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간호사에게 체온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숫자를 확인하면서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 내가 만든 병동의 온도는 몇 도였을까요.
아마 체온계로는 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퇴원한 어느 환자의 기억 속에는 분명 하나의 온도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온도가 너무 뜨겁지는 않더라도, 오래도록 식지 않는 따뜻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암병원간호1팀
김치호 대리
병동에서 마주한 특별한 순간들,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간호 에세이를 전합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보호자 없이 환자들이 최상의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이곳에서 환자들과의 병원 생활을 되돌아보며 '이상적인 병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