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엄마를 부탁해 2026.10.29

 

(AI 생성 일러스트)

 

“비상, 비상…. 10분 뒤래요.”

 

유난히 날카롭게 울린 전화는 응급실 환자를 빨리 받아달라는 통보였다. 그날의 초응급 상황은 말 그대로 핏빛에 가까웠다. 내 성씨가 넓을 홍(洪)이 아니라 붉을 홍(紅)이 분명하다는 말을 또 들으며 서둘러 환자를 받을 준비를 했다.

 

동네의원에서 첫아이를 출산한 산모였다. 출산 직후 갑작스러운 대량 출혈이 시작됐고, 10팩이 넘는 수혈에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파종성혈관내응고증후군까지 겹쳐 결국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119 구급대와 함께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심폐소생술은 계속됐다. 가까스로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출혈은 여전했고, 산모는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회음부에서는 핏덩어리와 함께 선혈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거즈로 막고 압박해도 소용없었다.

 

출혈이라는 녀석과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출혈은 늘 우리보다 몇 걸음 앞서 있었다. 혈액은행에서 가용한 혈액을 전부 가져왔다. 손으로 짜고 기계로 밀어 넣으며 수혈해도 쏟아지는 피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예정된 시술 일정을 조정해 산모를 혈관조영실로 옮겼다. 가까스로 출혈을 일으키는 자궁 혈관을 찾아 막고 나서야 혈압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창백했던 얼굴에도 희미하게 혈색이 돌아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이 환자의 혈관을 달리고 있는 피 가운데, 원래 이 환자의 것은 얼마나 될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팔을 걷어 내어 준 피가 환자의 몸을 돌고 있었다.

 

‘쩍쩍, 쩍쩍’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침대 아래까지 흘러 말라붙은 피와 여기저기 흩어진 핏빛 발자국을 닦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환자가 보였다.

 

의식이 없는 산모의 몸은 퉁퉁 부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위태롭게 누워 있었다. 이 사람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아이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열 달 동안 배 속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손과 발을 느끼며 얼마나 많은 순간을 상상했을까.

누구를 닮았을까.

태어나면 제일 먼저 어디를 만져볼까.

이제 막 품에 안아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곳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아기는 엄마와 떨어진 곳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다고 했다.

 

면회 시간이 되면 남편은 아내 곁에 앉아 손을 부여잡았다. 첫아이였지만 진통도 잘 견뎠고 아이도 무사히 낳았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단다. 한시름 놓고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불과 30분 만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OO야, 눈 좀 떠봐. 우리 아기 이름도 지었어. OO야…. 자기가 좋다고 했던 이름으로…. 제발 눈 좀 떠봐. 제발.”

애원하다 울고, 울다가 자책하고, 다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큰 병원에서 낳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제가 자리를 안 비웠다면, 그래서 1분이라도 빨리 발견했다면 괜찮았을까요?”

 

어느 날에는 이런 말도 했다.

“이 사람 진짜 착해요.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 하필 우리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질 수 있었는지.

 

남편은 자꾸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가 답을 찾으려 했다.

 

출혈이 멎고 혈압이 안정되자 이번에는 열이 문제였다. 대량 수혈과 전신 염증 반응 때문일 수도 있었다. 감염은 없는지, 뇌손상으로 체온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여러 검사가 이어졌다.

 

다행히 감염의 증거는 없었다. 염증 반응도 치료하면서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이대로 잠잠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시 체온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호흡음을 들어보려고 청진기를 들던 순간, 딱딱하게 부어 오른 젖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대자 뜨거웠다.

 

그 순간, 잠시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이 환자는 아이를 낳은 산모였다.

아니, 엄마였다.

살리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출혈을 막고, 혈압을 올리고, 수치를 확인하고, 약을 투여했다.

 

그 사이에도 환자의 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의식은 아이에게 가지 못했지만, 몸은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모유가 가슴에 고여 있었다. 아이스팩을 린넨으로 감싸 겨드랑이에 끼워주다가 침상 곁에 놓인 아기 사진을 보았다. 초유는 꼭 먹일 거라며 수유용품을 이것저것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젖을 나오게 할 것이 아니라 멈춰야 했다. 아기에게로 향하던 몸을 멈추게 하는 약을 투여했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그날 그 약을 투여하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다. 아기 사진이 하나 둘 침상 곁에 쌓여 갔다.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다.

 

여러 검사 끝에 산모는 심한 저혈량성 쇼크로 인한 뇌손상 진단을 받았다.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려웠다. 아이와 눈을 맞추는 것도, 자신의 의지로 손을 뻗어 아이를 만지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기적.

평소라면 쉽게 입에 올리지 않았을 단어가 그때만큼은 간절했다.

한 번만이라도 아이를 바라볼 수 있기를.

한 번만이라도 제 손으로 아이를 품어볼 수 있기를.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있었다. 출혈을 막았고,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혈압을 붙들었고, 밤낮으로 수치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끝이 있었다. 그 끝 너머의 일은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침상 주변을 빼곡히 채운 아기 사진을 바라보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는 조금씩 표정이 생겼다. 엄마가 누워 있는 동안, 사진 속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문득 두려워졌다.

훗날 저 아이가 자라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날,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저렇게 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남편이 그날 잠깐 자리를 비운 자신을 탓했던 것처럼 아이도 자신의 출생을 탓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때는 그 한마디를 끝내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침상 곁에 하나둘 늘어가던 아기의 사진과, 그 사진 속에서 혼자 자라던 아이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탓을 하던 젊은 남편을.

그리고 그들 앞에서 어떻게 마음을 건네야 하는지 몰랐던,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기적의 편에 서고 싶었던 스물여섯의 나를.

아카데미운영팀
홍민지 차장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과 감염관리실, 국제진료센터를 거쳐 현재 아카데미운영팀에서 전 직원의 성장을 돕는 교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5년, 간호사로 살아온 시간 동안 의료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장면들 속에 스며든 의료인으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진심'의 온도로 잔잔히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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