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연구이야기 약과 독의 경계, 신약개발과 약물대사 및 약물동력학(DMPK) 연구 202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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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학과 오수진 교수
 

융합연구지원센터, 신약개발지원센터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아닌 것은 없다. 다만 용량만이 독이냐 약이냐를 결정한다.”

 

16세기 의사이자 연금술사 파라켈수스(1493~1541)의 이 명제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약리학과 독성학의 근간으로 인용됩니다. 같은 물질이라도 어디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작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가 ‘보톡스’로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입니다. 강력한 신경독이지만 극미량을 정밀하게 쓰면 근긴장이상과 편두통, 경직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듯 주름도 펴줍니다.

 

약물치료의 본질은 단순히 효과 있는 물질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효과는 나타나면서 독성은 생기지 않는 구간, 즉 치료역(therapeutic window)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입니다. 약물의 임상적 가치는 특정 환자에서 적절한 약물 노출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중심에 약물대사·약동학(DMPK, Drug Metabolism and Pharmacokinetics)이 있습니다. DMPK는 약이 몸에 들어가 어떻게 흡수되고 퍼지며, 분해되고 빠져나가는지를 정량적으로 밝히는 학문입니다.

 

▲파라켈수스(1493~1541)

 

무병장수의 꿈, 유병장수의 현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습니다. 당시 인류의 꿈은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 무병장수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의학이 발전해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오히려 병과 함께 오래 사는 ‘유병장수’의 시대가 됐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암, 퇴행성 신경질환 등은 완치보다는 ‘평생 관리’의 대상이죠. 여러 약을 동시에 먹는 다약제 복용(polypharmacy)이 흔해졌고, 약물들이 서로 영향을 미쳐 약효가 달라지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약물상호작용(Drug-Drug Interaction, DDI)의 위험도 커졌습니다.

 

고령 환자는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간으로 가는 혈류가 줄고 신장의 여과 능력이 떨어지며, 체지방은 늘고 체수분은 줄어듭니다. 약을 분해하는 효소와 운반하는 수송체의 활성까지 달라집니다. 그 결과 같은 용량을 먹어도 사람마다 체내 약물 농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항암제, 면역억제제, 항응고제처럼 치료역이 좁은 약은 이 차이가 치명적입니다. 혈중 농도가 조금만 낮아도 치료에 실패하고, 조금만 높아도 심각한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래서 오늘날 약물치료는 표준 용량뿐 아니라 환자의 유전적 배경을 살피는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 그리고 장기 기능과 병태생리, 병용 약물까지 함께 따지는 정밀의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약물의 농도-시간 곡선. 혈중 악물 농도가 최소 유효 농도(MEC)와 최소 독성 농도(MTC) 사이, 즉 치료역 안에 머무는 동안 약은 독성 없이 효과를 낸다.

 

신약개발의 성패를 가르는 것

이러한 변화는 신약개발 현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수한 활성을 보이는 물질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엔 약효뿐 아니라 체내 흡수와 분포, 대사 안정성, 약물상호작용 가능성, 독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유효물질(hit) 발굴과 선도물질(lead)로의 발전, 그리고 신약 후보물질(candidate) 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약물의 체내 동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세포 실험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인 물질이 임상시험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약물이 빠르게 대사되어 체내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거나, 혈액 속 단백질과 결합해 실제로 작용하는 약물의 양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물수송체의 영향으로 표적 조직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특정 조직에 과도하게 축적돼 간독성, 심독성, 신독성 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약 후보물질의 가치는 ‘체내에서 적절한 농도를 필요한 시간 동안 유지하면서 치료 효과는 높이고 독성은 최소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최근 DMPK 연구는 혈중 약물 농도 분석을 넘어 조직별 약물 분포, 종양 내 약물 침투, 대사체에 의한 독성 평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체의 생리적 특성을 반영해 약물의 체내 동태를 예측하는 생리 기반 약동학(Physiologically Based Pharmacokinetics, PBPK) 모델링과 AI를 활용한 약동학 예측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약물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인체라는 복잡한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는 대상으로 이해하려는 접근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임상 현장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약물상호작용 평가, 고령 환자와 간·신장 기능 저하 환자의 용량 조절, 혈중 약물 농도 모니터링, 항암제와 면역치료제의 독성 관리 등은 모두 약동학·약력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그림은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약과 독, 그 경계를 그리는 일

약물의 체내 농도와 작용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해 약효와 안전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곧 약과 독의 경계를 그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기반에 DMPK 연구가 있습니다. 환자에게 최적의 약물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이 연구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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